지난 설날에도 고향 길을 오가는 수많은 귀성객이 가장 선호하는 교통수단은 바로 고속철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가장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매년 명절마다 귀성객들의 기차표 구매는 사실 '하늘의 별 따기'를 방불케 한다. 명절은 물론 주말에도 요금할증이 붙지만 불만을 제기해도 내리기는커녕 매년 오르기만 하고 있다. 차량이 갑자기 멈추거나 출발 지연을 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그저 안내방송 한 번이면 끝이다. 비행기보다 요금이 싸고 고속버스보다 빠른 고속철을 포기하기란 여간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고객은 그저 기다리는 미덕(?)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현재 우리나라 철도 노선 운영권 전부를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려 113년간 경쟁자 없이 혼자 장사를 하다 보니 그야말로 '배짱 장사'가 가능했다. 정부가 이를 보다 못해 오는 2015년부터 고속철도 운영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착공 단계에 있는 수서~평택 간 수도권 고속철도와 호남선 KTX 열차 운영권 일부를 민간에 임대해 코레일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이다.
경쟁체제 도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고속철 전반의 이용요금 인하가 기대된다는 점이다. 현재 코레일이 운영하고 있는 고속철도의 운영 수익률을 보면 20% 이상의 요금 인하가 가능하다. 이 중 일부는 선로 사용료로 국가가 회수해 고속철도 건설로 발생한 부채(한국철도시설공단 채권발행 조달, 누적부채 17조7000억원) 상환에 사용하고 일부는 운임을 인하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다.
경쟁자 없이는 발전이 없다. 항공, 통신, 전자제품처럼 독점에서 경쟁으로 바뀌면 요금이 인하되고 서비스가 개선될 것은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예측 가능한 명제다. 항공도 1969년 대한항공공사가 국적기로 운영하다가 제2민항을 도입할 때 이해 관계자들이 그렇게 반대했으나 도입 이후 현실은 어떤가. 경쟁으로 인한 서비스 개선과 2005년 저가항공사 진입 후 대형 항공사가 운임을 동결하는 등 요금 경쟁력 확보에 힘쓰고 있다.
코레일도 경쟁자를 맞게 되면 지금은 어렵고 불편하겠지만 결국은 원가를 절감하고 민간운영사와 경쟁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해외 사례에서도 이는 입증됐다. 이미 1987년 철도 민영화가 이뤄진 일본이 증명하고 있다. 20년간 단 두 차례 소비세 인상에 따른 미미한 요금인상 외에는 요금인상이 거의 없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철도요금이 상한제로 운영되고 있다. 민간사업자가 철도운영을 맡아도 요금인상이 대폭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
철도 운영권 경쟁체제 도입은 사실 뜬금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2004년 철도산업 선진화 계획 발표 이후 정부는 로드맵을 만들고 이를 점진적으로 추진해왔다. 실제로 2003년 참여정부 때 경부고속철도에 대해 코레일을 제외하고 별도 운영을 시도했지만 2004년 개통이 임박한 상황에서 무산되기도 했다. 인력 양성, 차량 준비, 열차운영계획 수립 등 철도 운영자가 안전하게 고속철을 운영하려면 최소 2~3년이 소요된다. 그런 점에서 2015년 수서발 고속철이야말로 코레일의 독점운영권을 타파할 최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5일에도 아산역에서 누리로 열차가 역을 지나치는 사고가 있었다. 같은 사고가 올 들어 세 번째다. 그래도 국민은 독점이기 때문에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이번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면 영원히 코레일의 '배짱 장사'를 막을 수 없다. 2015년 명절 귀성길에서는 고장과 사고를 걱정하지 않고 좀 더 저렴한 요금과 질 좋은 서비스로 KTX를 이용하는 국민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철수 한국철도시설공단 기획예산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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