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주)신라원 홍병희 대표, 한남체인 출신, 중국서 유통업 하다 망하고 ‘한과’에 꿈을 담아
[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단돈 100만원으로 시작해 10년 만에 매출 60억원을 바라보는 중소기업이 있어 화제다.
충남 홍성군에 보금자리를 튼 한과 생산업체 (주)신라원 홍병희(55) 대표가 주인공.
홍 대표는 2001년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신라한과를 창업한 뒤 충남도의 수도권 기업유치 노력으로 2009년 홍성으로 옮겨왔다.
제품검수와 위생조건이 까다로운 홈플러스, 애경백화점, GS리테일, 그랜드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에 선물용 한과세트를 납품하면서 한과시장의 강자로 컸고 한과 하나로만 2010년 4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충남으로 기업을 옮긴 뒤 나온 성적이어서 충남도는 신라원을 눈여겨봤다. 지난해 7월 충남도의 유망중소기업으로 뽑혀 2017년까지 충남도의 경영지원을 받았다. 홍 대표는 올해 매출목표를 60억원으로 잡았다.
신라원의 성공은 옛것을 지키려는 노력 덕분이다. 한과를 만드는 기업이니 옛 방식으로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시장에서 쉽게 접하는 한과 대부분이 빨리 더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 숙성재료로 베이킹소다를 쓴다.
홍 대표는 “한과는 전통재래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숙성과정이 한 달쯤 걸리니까 베이킹소다를 넣어 하루 만에 숙성시키는 업체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달 숙성과 베이킹소다를 썼을 때 차이는 한과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홍 대표는 “엿치기 하면 구멍 뚫린 걸 볼 수 있지만 한과는 속이 누에꼬치처럼 얇은 실 같은 게 돌돌 말리면서 꽉 차야한다. 소다를 쓰면 속이 휑해 이 모양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그만큼 한과의 찰지고 달콤한 맛이 덜하다는 뜻이다.
한 달 숙성은 시간은 물론 재료값도 더 나간다. 찹쌀 한 가마를 한 달 발효하고 세척하면 80%만 남는다. 베이킹소다를 쓰면 100% 다 쓸 수 있어 돈을 아낄 수 있다.
홍 대표는 “비효율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숙성만큼은 손실이 있어도 전통 재래방식으로 해야 한과 본래 맛이 난다”고 말했다.
신라원에서 1년에 찹쌀 60t을 재료로 쓰고 있으니 이 중 12t은 그냥 버리는 셈이다.
◆바닥까지 갔던 인생,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아
홍 대표는 1976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한남체인이었다. 이곳에서 5년간 식품유통업을 배운 뒤 독립,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유통업체에 물품을 납품하는 중도매업을 하다 모은 돈을 갖고 1995년 중국에 진출했다.
넓은 중국시장이어서 유통은 황금알 낳는 거위 같았다. 사업이 커지면서 투자규모도 커졌지만 5년만에 쏟아부은 4억원의 돈은 잃었고 우리나라로 와 그가 손에 쥔 건 100만원 뿐이었다.
홍 대표는 “이 돈으로 재기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다. 중국동포들이 명절에 한과를 만드는 것을 보고 배웠던 것을 떠올려 한과사업에 뛰어들었다”며 “대기업이 하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렸다. 작은 공장에서 만든 한과를 그랜드백화점과 롯데마트가 사업을 시작할 때 납품을 받아주면서 사업이 안정단계에 올랐다”고 옛일을 돌아봤다.
주문량이 늘면서 작은 공장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다. 마침 충남도가 수도권 기업유치를 하던 때라 부인(차명숙씨)의 고향인 홍성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한과에서 시작해 전통식품으로, 또 한우 대형판매장까지 설치해 홍성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우판매만으로 지난 해 1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역과 함께하는 상생기업 만들겠다
신라원이 2009년 홍성군으로 옮긴 것만으로도 지역경제에는 큰 이득이다. 홍성군 천수만지역 2만4000평에 이르는 곳에서 친환경 유기농 찹쌀계약재배를, 홍성군 서부면 상황리 속동갯벌마을과는 자매결연을 맺고 신라원체험장에 쓰이는 농수산물을 이 마을서 가져다 쓴다.
홍 대표는 한과공장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기업이전 때 약속했던 ‘농수축산물 테마파크’ 구상을 하나씩 실천했다.
서부면 광리에 자리 잡은 3만4214㎡의 신라원 공장은 전통한과체험장으로 탈바꿈했다. 해수절임배추 체험장, 장류 체험장도 같은 터에 들어섰다. 터 한가운데엔 분수광장이 들어섰고 정자가 경치 좋게 자리잡았다.
분수광장 바로 옆엔 700여 항아리가 정갈하게 놓여 있다. 홍 대표가 평생 모아온 수석과 옛 농기구와 가구, 생활용품 등 수천여 점의 수집품들은 2층짜리 전시장 2동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홍 대표는 “학생들이 돈 내고 여러 곳에 야외체험을 하지만 제대로 얻어오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곳에서 여러 전통식품을 체험하고 전시관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기업은 물건을 잘 팔아서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환원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꿈은 꿈꾸는 사람의 전유물, 중국어마을 만들고 파
홍 대표는 자신의 이름으로 모은 재산이 하나도 없다. 벌어들이는 수입은 모두 법인으로 들어간다.
그는 “한과 유망중소기업으로 선정됐다. 올해 한과업계 첫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을 받을 계획”이라며 “이러면 회사는 잘 돌아간다. 나는 관심이 있던 우리나라와 중국학생교류에 더 신경을 쓰고 싶다”고 꿈을 드러냈다.
그의 인생 마지막 꿈은 ‘중국어마을’을 만드는 것. 홍 대표는 “영어마을은 전국에 몇 곳이 있지만 중국어로 말하고 생활하는 중국어마을은 없다. 폐교를 사서 중국어마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에서부터 한중학생교류를 주선해왔던 그였기에 중국어마을은 학생교류에서 문화교류로 범위를 넓히자는 뜻이다.
그는 “폐교를 리모델링해 금요일에 들어와 일요일까지 생활하고 학교로 돌아가는 시스템으로, 학생들이 중국어를 더 가깝게 배우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은 그와 가까운 중국의 중·고교 교장선생님들이 소속선생님들을 1년간 파견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놨다.
그는 “기업의 사회참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이 21세기에 살아남는다. 나 혼자만 돈 벌고 잘 살자고 하면 기업하는 사람만 망하는 게 아니다. 직원, 지역사회가 망한다”면서 “홍성은 내 꿈을 일궈주는 약속의 땅”이라고 말했다.
이영철 기자 panpanyz@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