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울며 겨자먹기로 현금 확보에 목매달고 있는 유럽 은행들이 알짜 사업부(crown jewel)마저 잇달아 매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향후 은행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이달 초 공개된 유럽은행감독청(EBA)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에 따라 유럽 은행들은 당장 6개월 안에 1147억유로를 조달해야 한다.
은행 주가가 너무 낮아 은행 입장에서는 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상황이다. 또 부실해져 팔아치우고 싶은 자산은 있지만 부실 자산은 매수 대상자를 찾기가 어렵다. 헤지펀드나 사모펀드들은 은행이 약해진 틈을 타 자산을 헐값에 인수하려 들고 있다.
신주 발행은 어렵고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되기는 싫은 유럽 은행들이 어쩔 수 없이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알짜 사업부를 매각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가장 많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스페인 최대 은행 방코 산탄데르는 최근 잇달아 브라질과 칠레의 보험, 은행 사업부를 매각했다.
특히 매각 물량 중에서는 자산 기준 브라질 최대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 칠레 지분도 포함돼 있었다. 방코 산탄데르 칠레는 지난 2008년과 2010년 사이에 순이익 45%나 늘었고 올해에도 15% 추가 상승해 9억7000만달러의이 순이익 기대되는 알짜였다.
산탄데르는 미국 소비자대출 사업부도 사모펀드인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매각했는데 이 때문에 산탄데르의 순이익이 1억5000만유로 줄어들 것이라고 로얄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의 라울 레오나르드 애널리스트는 분석했다.
벨기에 은행 KBC도 3분기 순이익이 9.5% 증가한 폴란드 크레디트(kerdyt) 뱅크 지분 80%를 매각했다. 케플러 캐피탈 마켓츠의 베노이트 페트라크 애널리스트는 크레디트 뱅크 지분 매각 때문에 KBC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9.9%에서 17.3%로 하락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페트라크는 충분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KBC가 체코 사업부도 매각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체코 사업부를 매각하면 ROE가 11%로 낮아지겠지만 핵심 자기자본 비율을 10.5%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32억유로를 조달해야 하는 독일 최대 은행 도이체방크도 지난달 모든 선택사항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투자은행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도이체방크는 자산운용 사업부 대부분을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들은 당국의 자기자본 확충 요구 때문에 은행들이 미래 수익과 경제성장률을 대가로 자산 매각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로더의 아자드 장가나 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은행들이 "은행들이 당국의 규제 때문에 수익성 높은 사업부를 매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떨어진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더 위험을 감수하는 대출을 시도할 수 있고 이는 결국 은행의 부실과 파산으로도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 유럽에서 매각 대상을 찾지 못한 은행들이 동유럽이나 남미 지역의 자산을 매각하면서 이들 지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SLI 유러피언 에쿼티 인컴 펀드를 운용하는 윌 제임스 매니저는 "은행들이 알짜 사업부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 시장은 단기적으로 이에 대해 보상을 해주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의문"이라며 "저성장 또는 정체 환경에서는 알짜 자산을 매각한 은행들은 계속해서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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