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러시아 3대 재벌 미하일 프로호로프(46·사진)가 12일(현지시간)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이미 출마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현 총리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이날 보도했다.
러시아 신흥 재벌 '올리가르히' 가운데 한 사람인 프로호로프는 180억 달러(약 19조5500억 원) 상당의 순재산을 소유한 러시아 제3의 억만장자로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루살의 지분 17%, 러시아 최대 금 채굴업체 폴류스 골드의 지분 30%를 갖고 있으며 미국 프로 농구팀 뉴저지 네츠의 구단주이기도 하다.
프로호로프는 지난 5월 16일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150km 떨어진 칼루가주(州)의 한 발전소를 방문한 가운데 친여·친기업 정당인 '프라보예 디옐로'(올바른 일)의 대표 후보로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프라보예 디옐로는 6월 전당대회에서 그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프로호로프는 이후 12월 총선 운동에 개인 재산 중 1억 달러나 쏟아 부어 프라보예 디옐로를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에 필적하는 유력 정당으로 키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국 BBC 뉴스가 '통합러시아당의 2중대'라고 표현한 데서 알 수 있듯 프라보예 디옐로 내에는 친크렘린 계파가 엄연히 존재한다. 프로호로프는 당내 갈등에 휘말려 지난 9월 중순 대표직에서 쫓겨났다.
프로호로프는 왜 올리가르히의 정치 참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푸틴 총리에게 맞선 걸까.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로 대권 야심을 드러냈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는 2003년 당시 푸틴 대통령에게 찍혀 탈세 혐의로 8년 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 지난해 12월 추가 유죄 판결로 형량이 6년 늘어 오는 2017년에야 석방될 처지다.
지난 2000년부터 8년 동안 크렘린에 머문 뒤 3연임 금지 규정에 묶여 총리로 물러났다 다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푸틴 총리는 최근 총선 부정 논란으로 다소 흔들리는 처지다. 야권의 대규모 시위로 새로운 인물과 변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고 있는 요즘 젊고 활력 넘치는 프로호로프가 새로운 지도자상으로 떠오를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지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의 발레리 표도로프 대표는 "12월 총선에서 도시 중산층을 대변할 정치 지도자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이제 도시 중산층이 전과 달리 선거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도시 중산층은 이번 총선에서 통합러시당 인사만 아니면 누구든 좋다는 식으로 투표했다. 프로호로프가 푸틴 총리의 유력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2008년 창당된 프라보예 디예로는 내년 대선에서 푸틴 총리 아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자수성가형 억만장자인 프로호로프는 모스크바 태생으로 어릴 적 부모를 여의고 가난한 농민인 조부모와 유대인인 외할머니 밑에서 성장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1989년 모스크바금융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1989~1992년에는 옛 소련 당시 설립된 모스크바 소재 국제경제협력은행(IBEC)에서 관리직으로 일했다.
IBEC는 사회주의국가 공동체의 은행으로 사회주의적 국제 분업을 발전·확대시키고 경제협력을 확대하며 사회주의 국가들의 지불체계를 완성하고 다른 나라들과 경제유대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1963년 10월 출범한 국제은행이다.
사회주의 체제 몰락으로 사유화가 확산되던 1993년 28세의 프로호로프는 자신이 이사회 회장으로 있던 오넥심 은행을 통해 금속업체 노릴스크 니켈 매입에 나섰다. 노릴스크 니켈은 프로호로프의 지휘 아래 세계 최대 니켈·팔라듐 생산업체로 성장했다. 그가 노릴스크 니켈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2007년 2월이다. 같은 해 5월 그는 투자펀드인 오넥심 그룹을 출범시켰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는 지난 3월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프로호로프를 32위로 올렸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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