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운 좋은 정자(精子) 클럽의 회원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81)이 고삐 풀린 초부유층 집안 자녀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이런 표현에서 알 수 있듯 버핏 회장은 억만장자가 자식에게 부(富)를 물려주는 것에 반대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재산 규모 500억 달러(약 54조2000억 원)로 세계 제3의 억만장자인 버핏 회장은 자기 재산 가운데 99%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이런 버핏 회장이 장남 하워드 버핏(56·사진)에게 회장직을 물려줄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11일 저녁(현지시간) 방영된 CBS 시사 프로그램 '60분'에서 "하워드가 버크셔의 최고경영자(CEO) 아닌 '회사 가치 지킴이'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버핏 회장이 사망할 경우 하워드는 급여를 받지 않는 '비상근 회장'으로 부임해 지금까지 이어온 콩·옥수수 농사를 계속할 수 있다. 하워드는 별도 인터뷰에서 "조만간 아버지 대신 회장직에 앉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회장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버핏 회장을 보좌해온 데비 보사넥은 미국의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와 가진 회견에서 "하워드가 비상근 회장으로 버핏 회장이 현재 맡고 있는 역할 가운데 3분의 1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색다른 주장을 내놓았다.
여기서 보사넥이 말하는 세 역할이란 버크셔의 회장, CEO, 최고투자책임자(CIO)다. 그는 "이사회 결정에 따라 하워드의 핵심 역할이 CEO로 정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버크셔의 연례 보고서에 담겨온 한 조항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따르면 버핏 회장이 별세할 경우 가족의 일원이 즉각 CEO를 맡아야 한다.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성장한 하워드는 공부보다 농기계에 관심이 많아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캠퍼스를 중퇴하고 1977년 결혼과 함께 농사 짓기 시작했다. 하워드가 농사 지은 땅은 버핏 회장이 30만 달러에 매입했던 것이다. 버핏 회장은 하워드에게 임대료를 꼬박꼬박 받아 챙겼다. 하워드는 현재 네브래스카주의 땅 1.6㎢, 일리노이주 중부에 자리잡은 가족 명의의 땅 5.0㎢를 경작하고 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하워드는 2000년 아프리카로 여행 갔다 현지 주민들의 척박한 삶과 접한 뒤 질병·가뭄에 강한 농작물 개발과 아프리카 농민을 위한 소액 대출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이를 주도하는 조직이 그가 설립한 '하워드 G. 버핏 재단'이다. 하워드 G. 버핏 재단은 소외 받은 세계 빈민들의 생활수준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는 자선단체다.
최근까지 미 국방부 소속으로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의 농업개발 책임자로 활동했던 그의 아들 하워드 W. 버핏도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콩 농사를 지으며 재단 이사로 일한다.
재단 이사직 연봉은 13만5000달러. 그러나 아버지 하워드는 아들을 그 자리에 앉히면서 9만5000달러로 깎았다. "아들의 나이가 아직 어리니 아들이 연봉 값을 제대로 하는지 보고 마음에 들면 차후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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