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국채 중 57%를 국민이 보유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외국인들이 이탈리아에 등을 돌리면서 이탈리아 국채수익률이 급등하고 있지만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하지 않는 것은 이탈리아 국채를 많이 사는 이탈리아 국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은행 관계자들은 이탈리아 국민들이 전통적으로 국채를 적극 매수한 만큼 당분간 계속해서 국채를 매수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들이 국채를 외면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이탈리아가 채무 불이행(디폴트) 방어막으로 자국 국민들에게 구애를 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일본과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각각 230%와 120%로 높고, 보수성향의 고령 인구가 많으며, 해외 투자자들에 비해 국민들의 정부 국채 보유 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
현재 이탈리아 은행, 보험, 국민들은 이탈리아 국채의 약 57%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국채보유비율은 약 90%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가계는 전체 순자산 8조6000억유로 중 3조6000억유로를 금융자산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가계 자산에서 국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이른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가구당 순자산은 약 34만유로로 주요 공업국 중 가장 높다. 한 마디로 정부는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지만 국민들은 부유하다는 뜻이다.
최근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아직까지는 공황상태에 빠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은행과 기업 관계자들은 다음 주 월요일을 '이탈리아 국채 매수하는 날(buy Italian bonds day)'로 정하고 후원에 나서고 있다.
높은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을 외국인 투자자들은 디폴트 위험이 높아진 것으로 보는 반면, 이탈리아 국민들은 오히려 투자수익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한 로마 시민은 "지금 국채는 매우 수익성이 좋은 투자"라면서 "경제를 돕기 위해 우리 모두가 국채를 사야만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인테사 상파울루의 루카 메조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9월까지 이탈리아 은행 예금은 안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은행 예금은 1조3000억유로 규모다. 그러나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채를 매도하고 있는 만큼 이탈리아 정부가 국채 매수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인정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이 국민들이 국채를 계속 매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제 혜택을 주거나 예금금리를 낮게 유지해 상대적으로 국채 투자 수익률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또 공무원들이 국채를 사도록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제이콥 펑크 키르케가르드는 일본과 이탈리아처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국가에서는 국민들이 점점 더 정부에 의존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탈리아 국민들이 그리스에서처럼 자금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일본은 고립돼있어 국채를 대체할 만한 투자자산이 없는 반면 이탈리아는 독일이나 스위스 등에 자금을 예치할 수 있다. 또 일본은 국채 등 엔화 표시 자산을 보유하면 엔화 강세에 따른 수익도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이탈리아를 똑같이 볼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 6~9월 사이에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1090억유로를 차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까지는 이탈리아 중앙은행이 ECB에 60억유로를 빌려줬다.
이에 대해 영국 랭카스터 대학의 존 휘태커 교수는 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뺀 것이라고 분석하면서도 이탈리아 국민들이 해외로 옮기는 자산도 포함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휘태커 교수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일단 돈이 빠지기 시작하면 홍수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희 기자 nu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