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의 약속> 11-12회 SBS 수-목 밤 9시 55분
도로 한복판에서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잊어버린 서연(수애)은 오장육부가 끊어질 듯 울음을 토했다. 생애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생각난 단 한 사람인 지형(김래원)과 재회한 순간, 서연은 결심했다. “나한테 허락된 시간을 힘껏, 마음껏, 원 없이” 살겠다고.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었던” 남자의 프러포즈를 받아들이고, 재민(이상우)과 고모(오미연) 앞에서 서연은 내내 웃었다. 결혼을 앞 둔 모든 신부의 표정 그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더 버티지 않고 지형을 잡은 서연이 솔직하게 웃는 모습이 불편할 수 있지만 <천일의 약속>은 굳이 그녀에게 망설이는 표정도, 애써 변명하는 표정도 허락하지 않는다. 세상에 흔치 않은 순애보일 줄 알았던 이야기는 뚜껑을 열어 보니 극단적인 상황과 이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 딱 절반을 넘어선 <천일의 약속>은 이렇게 묻는다. 올바르게 살 것인가,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무리 서연이 자신의 병을 조롱하고 농담거리로 삼으며 평정을 가장해도 결국 기억을 잃고 자신을 잃고 죽어가게 될 거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운명 앞에서 서른 살 알츠하이머 환자는 어쩌면 병이 가져다 준 기회인 결혼을 결심하며 그저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올바르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사는 것을. 향기(정유미)와의 파혼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했을, 서연과 그녀의 병을 함께 껴안은 지형 역시 마찬가지다. <천일의 약속>은 환영받을 수 없는 이 사랑이 옳으니 이해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런 사랑도, 이런 인생도 있다고 보여주고 우리는 각자의 윤리에 비추어 이들을 비난하거나 불쌍해하거나 혹은 용서한다. 황망한 불치병에 걸린 서연이나 육두문자가 절로 나오는 지형이나 미련해서 속 터지는 향기나, 그 누구를 지켜보는 것도 마음 편치 않은 이 드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정의와 행복이라는 태생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들이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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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김희주 기자 fif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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