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기타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것은 화려한 성량을 뽐내는 무대가 아니라 소박하게 기타에 선율을 얹은 어쿠스틱 공연이며, Mnet <슈퍼스타 K>를 비롯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기타 플레이어들이 꾸준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심지어 KBS <톱밴드>는 기타맨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세상의 음악이 컴퓨터의 힘을 빌어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도 기타는 여전히 한쪽에서 그 저변을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10 아시아>가 사흘에 걸쳐 소개할 뮤지션들은 그런 기타와 꼭 닮아있다. 세상의 법석에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소년시절의 순정을 지켜나가듯 기타와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이 남자들은 단숨에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 마력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만들 수 있는 저력을 가졌다. 그래서 벌써 몇 장의 앨범을 발표한 이들을 지금 주목하는 일은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이들과 기타의 호흡은 앞으로 더욱 무르익을 것이 분명한 까닭이다. 그래서 말하건대, 소년은 기타를 들고, 기타여 야망을 가져라.
단정한 안경을 벗고, 하얀 운동화를 벗는다. 주섬주섬 셔츠를 걸치고 모자를 쓰면 변신 완료. 스튜디오에 들어선 정바비가 카메라 앞의 바비빌로 바뀌는 순간은 조용하지만 감쪽같다. 달라지는 것은 모습만은 아니다. 예리한 면도날로 세상의 아이러니를 저며낸 듯한 줄리아 하트, 계피의 목소리를 만나 독특한 감수성을 완성시켰던 가을방학으로부터 바비빌의 음악은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페달스틸, 벤조와 함께 ‘딩가딩가’ 흥겹게 흐르는 음악 위로 남자들은 술과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연애 실패로 만취한 것인지, 술에 취해 속마음을 털어 놓는 것인지 놀랍도록 솔직한 가사들은 뻔뻔함을 넘어 웃음을 자아낼 지경이다. “바비빌 작업을 할 때가 아마 가장 자연인 정바비에 가까운 상태일겁니다. 찌질하다는 표현이 썩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은 게, 누구에게나 있는 그 정도의 마음이거든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보통의 한국 남자 같은 느낌이었어요.” 앨범의 흥청거리는 분위기를 설명하면서도 정바비는 좀처럼 차분함과 논리를 잃지 않는다. “원래 컨트리 음악이 그래요. 쉬운 노래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거거든요. 여러 번 이혼한 여가수는 그걸 캐릭터 삼아서 자기 얘기를 해요. 저도 그런 컨트리적인 내러티브에 충실하게 노래를 썼어요. 가사에 등장하는 칫솔, 치약에 관한 이야기도 다 경험담이구요.”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컨트리적인 음악을 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래서 바비빌은 스스로 컨트리맨이 되는 대신 곡에 어울리는 보컬을 고르고,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타리스트를 찾았다. “저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물러난 거죠”라고 정확히 자신의 역할을 구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은 음악’ 이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목표에 둔 덕분이었다. 스스로 “꿈 같은 이야기지만”이라고 단서를 붙이지만, 언젠가 바비빌의 무대에서 영감을 받은 뮤지션들이 만돌린을 사용하고 컨트리의 감수성을 차용해 자연스럽게 자신의 취향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게 되기를 소망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다. 루이지애나와 테네시를 가로지르는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제 정바비의 얼굴에는 영원히 바비빌의 가면이 드리워 있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 이 남자의 기타는 벌써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작년 가을 무렵에, 한창 가을방학 활동을 할 때 이번 앨범의 노래 대부분을 썼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또 가을방학 같은 곡을 만들고 싶어지더라구요.” 단지 변덕이 아니다. 정바비가 만든 모든 멜로디의 인큐베이터인 기타가 그를 또다시 어디론가 데려갈 준비를 마친 것뿐이다. 그리고 다음 여행은 좀 더 멀리, 새로운 풍경을 보여줄 것 같다. “사실은 아직 시작 단계인데, 줄리아 하트를 봉인하고 새 밴드를 준비 중이거든요. 록킹한 기타팝을 할 것 같은데, 거기서 저는 기타만 칠겁니다. 오랫동안 플레이어로서의 연습을 안 해서 좀 걱정이기는 한데 사실은 이게 제 전공이거든요. 언니네 이발관 시절에는 제 앞에 마이크도 없었어요. 기타만 치던 시절로 복귀할까 싶어요.”
사실 한참동안 기타를 거의 안쳤다. 물론 곡을 쓸 때는 95% 이상 기타를 사용한다. 건반은 칠 줄 몰라서 가끔 우쿨렐레로 작곡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퍼포밍을 할 수 있는 기타리스트의 면모와는 영영 멀어진 걸까 생각하기도 한다.
원래 연습을 잘 안하는 타입인데, 언니네 이발관을 할 때도 (이)석원이 형이 만날 연습 안한다고 뭐라고 했었다. 하하. 그때부터 나는 이미 만들어진 프레이즈를 연습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더 좋았던 거다.
중학교 3학년 때 외고 입시를 끝낸 겨울에 처음 기타를 샀다. PC 통신으로 만난 형들과 자연스럽게 밴드를 하게 되었는데, 그게 언니네 이발관이었고 덕분에 나는 처음부터 “이 부분 만들어 와”하는 방식의 훈련에 익숙해졌다. 석원이 형이 음악에 관해서는 가차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대충 하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고. 연주자로서의 선택지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나의 노선이 자연스럽게 창작의 방향으로 설정된 부분은 있다고 생각 한다.
줄리아 하트는 당분간 전혀 아무런 계획이 없다. 4집까지 앨범을 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고, 더 이상 무슨 콘셉트로 앨범을 만들지 아이디어가 없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 노래들을 부르는 게 나도, 관객들도 어색해질 것 같고. 결정적으로 이제는 무대에서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게 행복하지가 않다.
그래서 바비빌 앨범을 작업하면서 가장 절실했던 것이 노래를 컨트리 풍으로 불러줄 수 있는 페르소나였는데, 찾는데 실패했다. 대신 노래마다 어울리는 보컬을 찾기는 했지만 이 프로젝트를 계속 같이 할 수 있는, 밴드의 성격을 한 눈에 캐릭터로 보여줄 수 있는 보컬에 대한 욕구는 항상 존재한다.
노래가 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까 2006년 발표한 1집에 비해서 술에 대한 집착적인 가사는 줄어든 느낌이다. 20대 시절처럼 두주불사로 마시는 경우가 점점 줄어드니까 말이다. 실제로 최근 3, 4년간 술은 줄고 연애 실패와 관련한 숙고가 많았는데 그런 부분이 가사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술박사’는 앨범을 다 만들고 나서 ‘술 얘기가 너무 없다’는 판단 하에 작정하고 만든 술노래다.
가사집은 노래를 부른 사람들이 다양한 종이에 직접 쓴 손글씨를 실었다. ‘치약의 맛’을 부른 서영호 씨는 자신의 통장을 제공했고, 내가 가사를 쓴 편지지에는 심지어 오타도 있다. 전반적으로 허세도 좀 부리고, 철 안든 남자들의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폰트를 쓰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페달스틸을 연주해 준 마이크 얼드리지는 그래미 수상 경력이 있는 팔순이 넘은 거장이다. 이메일로 작업을 의뢰 했는데, 일주만에 답신이 와서는 그제서야 ‘첨부파일이 안 열린다’고 하더라. 하하. 워낙 속도에 대한 생각이 다른 거지. 결국 결과물을 받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원래 ‘잡범’을 처음 만들고 4곡 정도 들어간 EP를 구상했었는데, 이 음원을 기다리는 동안 곡을 더 써서 결국 정규 앨범이 만들어 졌다. 평소 속전속결로 작업하는 편인데 이렇게 우여곡절이 많았던 앨범은 처음이다.
1집 때는 서수남 선생님을 만나서 조언을 듣기도 했다. 컨트리 음악을 전파하고 싶은 마음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디테일에서 다른 부분이 많아서 결국 공동 작업은 못했지만 이 장르를 시도하는 것 자체는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
그런데, 실제로 컨트리 음악을 하는 남부 지역은 보수적인 지역이기 때문에 생각만큼 공연장이 막 신나고 흥겹지는 않다. 가수도 기타 하나 매고 설렁설렁 노래 부르고, 관객들도 각자 따라 부르는 정도다. 그러니까 내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애티튜드도 사실은 컨트리적인 거다. 흠.
나에게 선비기질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자기 얘기하면 되는데, 노루야 너는 눈밭에 어쩌고 하는 거지. 음악적으로는 바비빌이 7부 능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데 나 자신이 그렇게 단순하고 유쾌한 사람이 못되는 거다. 생각 같아서는 카우보이 모자 쓰고 홍대에 나타나서 출입 금지도 당하고, 인터뷰에서 술 취한 채로 횡설수설 하고 그래야 하는데.
‘술박사’를 불러준 (조)태준이는 그게 되는 친구라서 부럽다. 자기가 쓰는 곡, 무대에서 보여주는 동작과 표정이 다 자기 거다. 내가 못하는 부분이다.
결국 컨트리 음악에서도 내가 매료된 부분은 단순하지만 좋은 멜로디다. 비치보이스의 앨범을 모으고 있기도 한데, 그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윤상 씨처럼 사운드와 편곡으로 음악을 달리 만드는 시대를 개척한 분도 있지만, 나는 아직도 새로운 멜로디에 감동을 받고는 한다. 그리고 내가 남의 멜로디에서 좋은 점을 발견하는 이상 나 역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아무래도 멜로디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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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희성 nine@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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