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차별화된 공간설계로 실수요자 유혹
이제는 겉이 아니라 ‘속’이다. 올해 아파트 건설의 트렌드이자 핵심 과제다. 바깥으로는 이미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미관이나 경관은 아파트의 기본사양이 돼버렸다. 경쟁은 이제 달라지는 ‘속’부터 시작한다.
서울에서 사는 김미정(38)씨는 아파트 분양 1순위다. 2002년부터 청약저축에 가입했고 최근 자금 계획도 마무리했다. 내 집 마련을 꿈꿔왔던 순간이지만 이제는 다른 고민이 생겼다. 경기도 인근에 집을 마련하기로 결정했지만 분양하는 아파트가 많아 좀처럼 쉽게 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특정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브랜드보다 내부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김씨는 “동네 주민과 함께 모델하우스를 다녀보면서 아파트 내부 구조나 인테리어에 관심을 쏟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서울 약수동 한 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정성현(49)씨도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정씨는 최근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큰아이가 내년에 수험생이 돼 독립적인 공부방이 필요해서다. 현재 아파트보다 최소 1개의 방이 더 있는 아파트를 구입할 계획이다.
정씨는 부인에게 아파트 구매 계획을 맡겼지만 자신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 큰 평수도 중요하지만 요즘 아파트에는 다양한 공간이 많아 DVD방을 하나 만들고 싶었다. 영화광이지만 거실에서 영화를 보면 수험생인 아이에게 방해가 될 것이 걱정이다. 정씨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아파트들이 많아 거기에 맞는 아파트를 찾고 싶다”며 “집을 구할 때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들이 이처럼 ‘속’을 보이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은 이제 건설사들이 외형이나 지리적 이점으로 고객을 사로잡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수많은 건설사들이 단지 내에 카페테리아, 사우나, 골프연습장, 게스트하우스 등 호텔급 커뮤니티를 제공해왔지만 결국 아파트 ‘속’에 주목하는 것은 공용이 아닌 차별화되는 내 공간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이제는 단순한 발코니 확장이나 마감재 차별화가 아닌 개인적인 공간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구가 늘고 있다”며 “특히 건설사들이 너도나도 명품 브랜드를 외치는 만큼 고객들은 거기에 부응하는 차별화 디자인이나 공간을 요구하는 것이 최근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목포우미파렌하이트 현관 모습. 한옥으로 실내를 구성했다.
현재 이 같은 디자인 변형 바람은 지방에서 먼저 일고 있는 중이다. 피데스개발과 우미건설은 지난 9월에 분양을 시작한 ‘목포우미파렌하이트’에 업계로는 최초로 한옥 디자인을 적용해 눈길을 잡았다. 전용면적 기준 127m²(38평형) 아파트에는 현관 입구에서 바로 출입이 가능한 사랑채 공간과 툇마루를 도입했다.
손님이 방문하면 한옥 사랑채로 모셨던 것처럼 현관에서 바로 출입할 수 있는 사랑채를 만들어 가족공간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손님을 맞이하고, 담소를 나눌 수 있는 특화공간으로 구성했다.
또 최상층 일부 세대는 천장을 높여 한옥 처마를 형상화한 계단식 천장도 적용했다. 간접조명을 통해 한옥 처마의 현대적 미학을 가미했다. 포스코건설이 대구에 건립 중인 ‘이시아폴리스 3차’는 공간을 크게 활용하도록 했다. 1층의 경우 세대별로 계단을 통해 지하 다용도실을 만들었다. 이곳은 개인 스튜디오나 가족 영화관 등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자투리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곳도 있다. GS건설 강서한강 자이는 집안의 신발장 옆 기둥이나 주방 모퉁이 등을 수납장으로 설계한 ‘코너 벽장’을 만들어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또 안방에 파우더 룸을 만들어 보석함처럼 뚜껑을 위로 올리는 ‘폴더형 거울’을 만들어 화장품이나 보석 등을 깔끔하게 수납할 수 있도록 최대한 공간을 활용했다. 또 거울 옆 수납장에는 ‘티슈 디스펜스’를 만들어 파우더룸을 깔끔하게 꾸밀 수 있도록 했다.
설계부터 고객들이 마음대로 변형할 수 있는 구조 방식을 채택하는 곳도 늘고 있다. 지난 4월 반도건설이 김포한강신도시에 분양한 ‘반도 유보라 2차’는 4.5베이(Bay)를 채택했다. 거실 1개와 방 3개를 창문이 설치된 아파트 내부 전면에 배치했다. 큰 방에 가변형 벽체를 설치해 입주자들이 취향에 맞게 공간을 활용하도록 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래미안 영통 마크원’은 전 아파트 침실을 가변형 설계로 구성했고 SK건설도 수원 ‘SK 스카이뷰’에 가변형 벽체를 적용해 주방과 거실 사이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4베이와 5베이 구조도 최근 트렌드 중 하나다. 전면부(거실)에 3개의 공간을 만들면 집 전체가 밝아지기 때문에 큰 인기다. 채광이 높고 발코니 확장 면적이 증가한다. 실사용 평수도 늘어나 대형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공간 활용을 높일 수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대전 도안신도시에 분양하는 ‘도안아이파크’는 지역 최초로 5베이를 적용했다. 특히 기둥식 구조로 설계해 수납공간을 최대한 넓힌 것이 최대 강점. 공간 활용도가 높아 각종 수납실 외에 어린이를 위한 공부방과 놀이방 등 가족실도 만들었다.
아파트 베란다를 정원으로 활용한 건설사도 있다. 현대건설의 ‘죽전 힐스테이 테라스 하우스’는 세대별로 최대 123㎡(37평형) 규모의 테라스를 만들었다. 세대별로 눈치를 보지 않고 각종 파티나 일광욕, 골프퍼팅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고 리모컨으로 조절할 수 있는 전동 어닝도 설치했다.
롯데건설도 서울 불광4구역에 지난 3월 공급한 ‘불광 롯데캐슬’을 통해 발코니에 중점 신경을 썼다. 각 층마다 발코니의 위치와 깊이가 다르다. 59㎡(17평) 규모의 아파트 내부는 4.5베이 구조로 설계돼 거실, 주방, 침실, 안방 등을 모두 남향으로 배치했고 테라스형인 95(28평형), 125㎡(37평형)는 세련된 복층 공간으로 만든다.
최근에는 이것도 모자라 입주민이 인테리어나 간단한 구조 변경까지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변경하는 곳도 있다. 대우건설은 수요자가 자신의 집 내부 구조와 인테리어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맞춤형 주택 ‘마이 프리미엄’을 내놓았다. 대우건설은 내년부터 모든 아파트에 적용하기로 했다.
입주예정자가 미리 방의 개수나 면적, 주방과 거실 구조를 직접 선택하면 그대로 시공하는 개별 맞춤형 서비스다. 마이 프리미엄을 적용하는 주택은 건물의 하중을 기둥으로만 집중시키고 ‘무량판’ 구조로 만들어 벽체를 재배치했다. 이 때문에 방의 개수나 면적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대우건설은 “가족이 늘어나거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그리고 이사 등으로 공간 구조를 바꿀 필요성이 많아지고 있다”며 “간편하게 구조를 변경하면 새 아파트에 입주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 마이 프리미엄의 최고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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