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만근인 어느 날이었습니다.
걷기도 힘들 정도였는데 이런 날은 차라리 라운드를 하지 않고 쉬는 게 상책입니다. 하지만 하루 수입이 짭짤하다보니 '깡'으로 버티며 근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고객님들께는 정말 죄송한 일이죠. 18홀 내내 '하하, 호호' 떠드는 캐디를 만나고 싶으실 텐데 말입니다.
그날은 저도 컨디션이 워낙 안좋아 충청도가 고향이신 고객들과의 대화에도 끼지 못하고 힘겹게 라운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투리를 심하게 쓰시면서 말씀도 꽤 많은 팀이었습니다. "뭐여?" "뭐가유?" "배꼽 튀어나왔자녀?" "안나왔는디유." 네 분은 벌써 티잉그라운드부터 시작해 그린 플레이를 마칠 때까지 이런 식으로 싸우고 계셨습니다.
"진짜~너무허네~" "뭐가유?" 저한테 말을 거십니다. "저~이봐유~지금 저 놈이 내 라이 밟은 거 봤어유~ 못 봤어유?" "네?" "뭐여~캐디도 한통속인겨?" "왜 캐디한테 그래유~?" 힘이 없는 저는 평소처럼 조잘대지도 못하고 고객님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몇 홀이 지나고 한 고객님께서 친 볼이 우측 나무숲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또 난리가 났죠. "나간 겨~안 나간 겨?" "형님, 나간 거 같은디유~" 서로 '나갔다, 안 나갔다'며 또 말씀이 많으신 고객님들 제가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유~"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고객님들은 동시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여태까지 만나본 캐디 중에 이렇게 웃긴 캐디 처음 본다며 웃으시더라고요. 저는 한마디도 안하다 어쩌다 입을 열어 죄송한 맘밖에 없었죠. 고객님들께서는 라운드 마칠 때까지 "괜찮아유~"를 외치시며 정말 즐거웠다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죄송한 마음에 말씀드렸습니다. "고객님, 저도 오늘 즐거웠어유~. 그리고 저두 충청도예유~."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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