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드라이브 샷의 비거리에 민감하신 고객이 오셨습니다.
다른 동반자들보다 멀리 보내면서도 만족하지 못하시고는 "에이, 거리가 이게 뭐야!"하시며 매번 툴툴대셨죠. 몇 개 홀이 지난 뒤 이번엔 제법 잘 맞은 샷이었나 봅니다. 저에게 다소 '업'된 목소리로 물어보십니다. "언니, 이번엔 잘 맞았는데 얼마나 나갔을까?"
저는 고객님을 실망시켜 드리기 싫었습니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 좀 오버를 했죠. "한 240m 쯤 거리가 나신 것 같아요. 진짜 거리 많이 나시네요." 문제는 다음 홀부터였습니다. 티 샷은 진작 해도 되는 상황이지만 본인의 비거리를 생각하시며 앞 팀이 아주 멀리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다음 홀에서도 또 한참을 기다린 뒤 물어보시는 고객님. "언니, 벙커까지 거리가 얼마야?" 이미 거짓말을 해 놓은 상황에 또 다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네, (실제는 약 220m쯤 되지만) 250m 됩니다." "음, 그럼 벙커는 안 들어가겠지?" 그때서야 드라이버를 잡습니다.
우리 팀의 점점 뒤처지는 플레이에 '큰일 났네'하면서 걱정을 하고 있는데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언니 백티(챔피언 티잉그라운드) 쓰자." "네?" "앞 팀 너무 기다려서 못 치겠어. 백티 쳐." 동반자들을 억지로 끌고 가셔서 벌써 티 샷을 준비합니다.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코스는 더욱이 티잉그라운드 앞이 깊은 러프와 해저드 등 온통 장해물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힘이 잔뜩 들어가 샷을 하시는 고객은 페어웨이 초입에 간신히 공을 떨어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지요.
한번 백티로 올라가신 고객님 역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진행도 늦을 수밖에 없었고요. 고객님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처음 백티 썼지만 별거 아니네"라고 말씀하시는 고객의 자존심을 지켜드린 것 같아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으니까요.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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