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
과거 80년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가 자사 제품에 대한 품질 우수성을 내세우며 사용했던 광고 카피다. '순간의 선택'은 정치권에서도 통한다. 내년 총선 승리를 책임질 한나라당의 수장 홍준표 대표는 지난 1996년 정치입문 당시 선택의 갈림길에 있었다. 그의 선택에 따라 민주당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었던 것.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최근 출간한 저서 '나는 민주당이다'를 통해 홍 대표의 정치입문의 에피소드를 공개했다. 여의도 정가에는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고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시 3김정치 청산을 내세운 꼬마민주당 소속이던 김 의원은 책에서 "홍 변호사 영입에 공을 들였고 홍 변호사도 긍정적 반응을 보냈다"며 "홍 변호사의 잠실 아파트로 이부영, 노무현, 제정구 의원 등과 함께 찾아가 홍 대표의 최종 결심을 받았다"고 밝혔다. 다음 날 민주당사를 찾아 입당선언을 하면 끝나는 상황이었지만 양김씨가 벌이던 영입 경쟁으로 하룻밤 사이 상황이 돌변한 것. 김 의원은 "나중에 상황을 종합해보니 홍 변호사 집에 새벽 5시 쯤 전화벨이 울렸는데 대통령의 호출이었다"며 "홍 변호사는 급히 청와대로 달려갔다. '아무 소리 말고 신한국당 들어오거래이' 홍 변호사는 결국 신한국당을 찾아가 입당을 선언했다"고 소개했다.
모래시계 검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뜨거운 영입경쟁은 홍 대표가 본인의 회고록 '변방'에서도 밝힌 대목. 홍 대표의 인기는 드라마 '모래시계'가 대박을 기록하며 지금 이상이었다. 15대 총선 당시 유세차에 '모래시계'를 틀어놓는 선거운동으로 압승을거둘 정도였다.
홍 대표는 꼬마민주당에 강남 공천을 희망했지만 답이 없었고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측의 러브콜에는 정계은퇴 번복을 이유로 입당을 거절했다. 그러던 중 김영삼 대통령 측에서 '문민정부의 검사가 야당에 갈 수 있느냐'고 해 애초 가려던 민주당에서 반응도 없고 해서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고 소개했다. 이후 노무현, 제정구, 김홍신 등 꼬마민주당 스타 정치인들이 집으로 찾아와 설득해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미 민자당(신한국당의 전신)에 입당 약속을 해버린 후였다고 고백했다.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홍 대표가 15년 전 다른 선택을 했다면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입문, DJ가 아닌 이회창 저격수를 거쳐 현재 민주당 대표 자리에 앉아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김성곤 기자 sk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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