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폴리텍대학 박종구 이사장 인터뷰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 마포구 공덕동 산업인력공단 내 이사장실을 찾은 지난 24일 오후. 오랜 비가 그친 뒤 뒤늦게 찾아온 무더위로 인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턱밑부터 숨이 차오를 정도였다.
이사장실의 에어컨이 신통치 않다며 통풍이 잘되는 넓은 회의실로 기자를 맞이한 박 이사장의 첫 인상은 '알뜰하다'는 느낌이었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입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박 이사장은 대화도중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수첩에 메모를 하는 '메모광'이었다.
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은 "폴리텍대학이 기술교육기관인 만큼 기업의 산업수요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지만, 기업을 운영하듯 대학을 운영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출신이 아니라 학자 출신의 박종구 이사장이 폴리텍 대학을 맡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박종구 이사장은 금호그룹의 창업자 故 박인천 회장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미국 시라큐스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대학 교수와 교육 관료를 거쳐 지난 22일 폴리텍대학 이사장에 취임했다. 기업과 연관을 맺고 있는 동시에 교육자의 삶을 살아온 박 이사장이 취임 후 처음 꺼내든 말은 '폴리텍대학의 역할론'이었다.
그는 "기업이나 사립대에서 맡기 어렵지만 사회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 대학에 요구된다"며 "폴리텍 대학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 교육기관으로서 '사회적 취약 계층을 위한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의 보살핌과 지원이 필요한 계층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낮은 등록금을 유지하면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국가가 교육을 책임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보호해야할 탈북 청소년, 다문화가정 청소년,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게 기술을 가르쳐서 다시 사회와 만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앞으로 더 강화할 것"이라며 "그래야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공공교육기관으로서 차별화에 성공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박 이사장은 "대학운영이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취업률 만족도, 사회적 안전망 구축 등 폴리텍 대학에게 주어진 과제를 차분히 수행해나갈 것"이라며 "국가의 지원에 상응하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교육훈련 기관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폴리텍 대학(Polytechnic)은 복합을 뜻하는 'Poly'와 기술을 뜻하는 'Technic'의 합성어로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중간 기술 인력을 배출하는 공공 직업교육 기관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34개의 캠퍼스에서 용접, 배관, 전기공사와 같은 기초기술부터 로봇, 항공, 바이오 같은 최첨단 기술까지 아우르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다음은 박종구 폴리텍대학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최근 산업의 허리에 해당하는 중간 기술직에 대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면서 해외 인력을 수입해온다든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다든지 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지 않나?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에게 폴리텍 대학이 보여줄 수 있는 비전은 무엇인가?
▲산업현장이 필요로 하는 실무형 기술자, 공학인을 양성하는 것이 폴리텍 대학의 기본적인 비전이다. 급격히 변해가는 산업사회와 기업구조의 흐름에 발맞춰서 신성장동력 사업의 기술인력 수요를 적절하게 충족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이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에 취직할 수 있느냐'하는 점이다. 폴리텍 대학은 졸업생이 고액 연봉을 받으며 취직한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히는 대학이다. 2010년도 졸업생 중 411명이 연봉 3000만원 이상의 임금을 받고 취업에 성공했다. 그런데 올해에는 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979명의 고액 연봉자를 배출했다. 이는 2년제 산업학사를 취득한 다기능기술자의 17%에 해당하는 수치다. 앞으로도 과거에 비해 교육의 질적인 수준을 높이고, 졸업생의 지적 수준과 기술 수준 등을 높여나가는 것이 폴리텍 대학의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정부의 지원이 늘면서 인문계 진학보다 특성화고(마이스터고)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들의 학업성취도도 높은 편이고, 진학경쟁률도 높아졌다. 주요 기업들과의 계약을 통해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비율도 늘고 있다. 고졸들의 취업문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굳이 폴리텍 대학을 가야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이스터고와 같은 특성화고는 '고교 교육과정'인 반면, 폴리텍 대학은 2년제 다기능기술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산업학사를 받을 수 있는 '대학 교육과정'이다. 마이스터고와 특성화고가 기업에 어필하는 건 산업현장과 밀접하게 연계된 교육 프로그램, 높은 기업적응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 역시 팩토리 러닝(Factory Learning) 학사관리제도, 기업전담제, 멘토링제 등 다양한 학사운영 시스템을 통해 맞춤형 취업연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사실 산업현장과 강의실을 연동시킨 실무위주의 제도는 한국폴리텍 대학이 국내 최초로 도입한 것이다. 팩토리 러닝(Factory Learning)시스템은 기업현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그대로 강의실로 옮겨와 기업에서 필요한 현장기술 중심으로 강의하고, 기업과 연계한 프로젝트 실습, 소그룹 지도교수제, 실무능력 인증제 등 생생한 현장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90%이상의 높은 취업률을 달성하고 있다.
또 교수 1인당 10개 이상의 기업을 전담 관리하는 '기업전담제'도 실시하고 있다. 현재 1만5000여개의 기업을 전담하고 있으며, 전담기업 중 70%가량에 우리 학생들이 취업하고 있고, 내년에는 맞춤형 현장교육을 강화해 75%까지 기업전담제 취업률을 끌어올릴 계획이다.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하는 길을 선택한 학생들을 위해서 폴리텍 대학과 같은 기술교육중심대학이 필요하다. 그런데 마이스터고의 기능이 강화됐을 때 폴리텍 대학의 존립기반이 약해지는 것 아니냐?
▲폴리텍 대학에는 물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직장 생활하다가 폴리텍 대학에 와서 재교육을 받고 다시 사회로 진출하는 비중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폴리텍의 기능이 기술 인력을 교육하고 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현재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향상훈련 역할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외에도 실업자, 경력단절 여성 등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기술을 가르쳐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능력개발훈련도 중요한 축이라고 할 수 있다.
-기술인력 양성이 목표인 만큼, 산업사회의 변화에 가장 빠르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술의 가치와 효용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산업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도 함께 변
화해야 한다. 학과와 전공의 통폐합 등으로 묶어줄 건 묶어주고, 특화시킬 건 특화시킬 계획이다. 이 문제는 캠퍼스의 기능 통폐합이나 구조조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많다.
우선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운영학과의 20%, 총 65개 학과를 미래신성장동력산업 학과로 개편하고, 이 분야에 필요한 중간기술인력 1만 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또 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하여 대외 경쟁력과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학과를 대학별로 1개씩 선정하여 선도학과로 개편하고 대학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폴리텍대학은 전국에 34개 대학이 퍼져있다. 전문대학 기술교육 측면에서는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본다.
각 대학들이 자치단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 상생하는 구조를 만드는 게 목표다. 폴리텍 대학이 주도하면서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맞춤형 프로그램 운영 중인 김제 캠퍼스 에서는 한국농어촌공사와 MOU를 체결해 '수자원관리 아카데미'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대학에서 수자원 관리 전문 기능 인력을 양성하면, 한국농어촌공사는 양성된 인력을 적절한 절차를 통해 2012년부터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로써 한국농어촌공사가 요구하는 수자원관리분야 전문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동시에 농어촌지역의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수자원 관리 전문요원'을 양성하는 교육과정은 김제캠퍼스가 전국 최초이자 유일하다. 취업 기회를 제공하는 혜택으로 인해 올해 신설된 수자원 관리과의 신입생 경쟁률이 16대1에 달할 정도로 치열했다. 1년간 공부하면 한국농어촌공사 수자원관리 인턴으로 배치, 1년 동안 인턴근무 후 성적에 따라 한국농어촌공사 기사 6급 수자원관리 전문요원으로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화 학과가 각 대학마다 있다는 것이 우리 대학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인지도를 높이려면 폴리텍 출신이 사회적 커뮤니티 내에서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졸업생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는 잘 이루어지고 있나?
▲폴리텍 대학 출신들이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주된 방향이지만, 그 외의 창업 등 새로운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올해 폴리텍 대학의 발전방안을 살펴보면 창업을 통한 고용창출도 강조하고 있다. 창업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기술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 법률 서비스, 시스템 측면에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앞으로 졸업생들을 위한 창업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필요한 경우 관계부처와 협의해 지원할 계획이다.
박종구 이사장 약력
▲1953년 생
▲충암고 졸업
▲성균관대 사학과 졸업
▲미국 시라큐스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ㆍ박사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제연구센터 연구위원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문위원
▲기획재정부 정부개혁실 공공관리단 단장
▲국무조정실 경제조정관
▲국무조정실 정책차장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혁신본부 본부장 역임
▲교육과학기술부 제2차관 역임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한국재정학상 학술상(1995)
▲황조근정훈장(2006)
대담= 황석연 사회문화부장
정리=이상미 기자
사진=이재문 기자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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