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방해' 피하고 2800명 수용하려니···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SC제일은행 총파업이 1일로 닷새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2000명이 넘는 은행원들이 구태여 속초까지 간 이유가 무엇인지를 놓고 은행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야유회 간 것 아니냐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SC제일은행은 전국 지점(414개)의 3분의2에 달하는 300개가 서울과 경기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당연히 서울이나 수도권을 집결지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파업 첫날 본점으로 와서 노조를 찾는 기자들이 많았다"고 말한다. '속초에 갔다'고 답변하면 다들 의아해하며 '왜 그 멀리까지 갔느냐'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
김재율 노조위원장은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한다.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본점이나 영업점에서 집회를 하면 '건물점거' 혹은 '영업방해'가 되기 때문에 사측이 시설물보호 요청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경찰의 공권력 투입이 가능하고 명백한 불법파업이 된다. 실제로 2004년 옛 한미은행 파업 당시 노조의 본점 점거로 여론이 악화되고 공권력 투입이 가시화되자 노조원들은 부득불 농성을 풀고 여주의 한국노총 연수원으로 옮겨간 경험이 있다. 이때의 경험이 교훈이 됐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합법 파업'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해야 이탈이 적을 것이라는 노조 지휘부의 고려도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이 많아 한꺼번에 수용할 공간을 찾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멀리 떠났다는 것. 이번 파업에 동참하는 노조원은 모두 2800여명. SC제일은행 전체 인력 6498명의 43%, 총 노조원 3000명의 90% 이상에 해당된다. 전산직원과 육아휴직중인 직원 등을 빼면 사실상 전 조합원이 이번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만한 시설이 전국적으로도 몇 개 없다는 것. 노조 지도부가 막판까지 고민한 후보지는 강원도 고성의 한 야영장과 속초의 콘도였다. 그러나 고성의 야영장의 경우 전 인원이 텐트를 치고 숙박해야 하는데 장마와 인원 통제 등의 어려움이 있어 제외됐다고 한다. 현재 조합원들이 머물고 있는 속초의 콘도는 객실이 총 571개에 달한다. 한 객실에 5~6명이 들어갈 수 있어 2800여명의 조합원이 한꺼번에 들어가기에 무난하다.
문제는 역시 돈.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그동안 노조원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회비로 모은 특별기금이 약 35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적립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사측의 부당해고 등이 발생했을 때 해당 직원에 대한 임금보상이나 구제 등에 사용되는 기금이다. 쟁의행위에도 쓸 수 있기 때문에 이 돈으로 파업비용을 충당하고 있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여기에 이번 총파업을 위해 조합원들이 추가로 모은 14억원도 비용으로 사용 가능하다. 비노조원 가운데 400여명의 간부 직원들도 모금에 동참했다고 한다. 업무의 특성상 이번 파업에 동참하지 못한 전산 직원들도 29일 1000만원의 추가 기금을 보내왔다. SC제일은행 노조는 이렇게 해서 50억원의 파업용 '실탄'을 마련해 놓고 있다. 노조는 현재 머물고 있는 콘도를 2주간 예약해 놓았다고 하는데 더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서울과 대구 등에서 70여명의 조합원이 30일 속초에 합류한 가운데 SC제일은행 파업 사태는 노사간 별다른 진전 없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고 있어 고객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조목인 기자 cmi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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