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의 일방적 협상안 발표 결국 직원들 집결하게 했죠"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어스름이 내린 29일 저녁, 속초의 한 대형 콘도미니엄은 2800여명의 투숙객들로 크게 붐비고 있었다. SC제일은행 노동조합원들이다.
이들이 영업점이 아닌 콘도에 모여 있는 이유는 사측의 성과연봉제 일괄 도입에 반대해 지난 27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측은 이번 주말이 파업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말이 지나면 속속 빠져나가 파업대열이 흐트러질 것이란 판단이다. 하지만 노조원들은 요지부동으로 보였다. 콘도 주차장에 설치된 집회장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었다.
은행권의 장기 총파업은 2004년 6월 옛 한미은행과 씨티은행이 합병할 때 이후 7년 만이다. 노조원 입장에서 개개인의 성과를 평가해 연봉을 책정하겠다는 사측의 방침이 달갑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이들이 총파업에까지 나서게 된 데는 성과연봉제 도입 반대라는 명분만 작용한 것일까.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소통의 부재'와 '불신의 벽'이 노사의 원활한 관계를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재율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은 리처드 힐 행장뿐 아니라 주변의 핵심 경영진들에게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행장 주변의 몇몇 간부들이 위아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행장의 눈과 귀를 막아 힐 행장을 고립시키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번 파업도 임금·단체협상만 끝나면 바로 해산할 거라고 수차례 얘기했지만 (사측에서는) 듣지 않는다"며 "임단협을 하고 나서 성과급제 도입을 하든 안 하든 태스크포스팀(TFT)를 꾸려 논의하자는 건데 사측은 무조건 성과급제 우선 도입이라는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며 노사간 불신을 토로했다.
총파업을 앞두고 지난 24일 노사 협의 후 사측이 일방적으로 협상안을 직원 및 언론에 배포한 게 오히려 파업에 불을 지폈다는 주장도 강했다. 노조는 사측이 직원들을 분열시키기 위해 이런 행동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역시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신의 결과였다.
김 위원장은 "(스탠다드차타드: SC) 영국 본사가 생각보다 강경한 입장이라고 들었다"며 "파업이 장기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파업이 잘 해결되면 사측과 노조원이 서로 이해하는 자리를 가졌으면 좋겠다"며 원만한 사태 해결에 대한 바람을 내비쳤다.
이날 만난 SC제일은행 노조원들은 모두 강경한 모습이었다. 파업이 언제까지 갈지에 대한 걱정보다는 더 이상 단기성과주의 위주 경영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가 강했다. 예상외로 20~30대 젊은 직원이 많았다.
한 20대 여성 노조원은 "파업을 앞두고 고객들을 일일이 만나 얘기를 나눴다"며 "오래 거래한 고객들은 오히려 파업을 독려하며 '꼭 이루고 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30대 남성 노조원은 "지난 금요일 사측에서 협상 중 언론과 전 직원에 (협상안을) 배포한 행동이 직원들을 더 결집하게 했다"며 "파업이 최소 2주는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래야 경영진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한편 인근 콘도에는 SC제일은행 사측 담당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하고 찾아가 봤지만 결국 만날 수는 없었다. 홍보실을 통해 나가는 자료 외에는 얘기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노사 양측은 합의점을 찾기 위해 하루에 한두 차례 정도 만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조목인 기자 cmi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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