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국제통화기금(IMF)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총재가 탄생했다.
IMF는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본부에서 집행이사회를 열고 새 총재로 프랑스의 크리스틴 라가르드(55) 재무장관을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이로써 1947년 IMF 출범 이후 64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수장이 탄생했다. 그는 또 경제학자가 아닌 법률가 출신이 총재직에 오르는 첫 사례다.
◆월가가 인정하는 첫 여성 총재=라가르드 선출은 이날 집행이사회 개최를 앞두고 IMF 의결권 지분의 17%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 공식 지지를 선언한 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 유럽(40%) 표몰이에 성공한 라가르드는 과반 이상을 얻어 총재로 선출됐다.
라가르드에 맞서 총재직에 도전한 멕시코의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중앙은행 총재는 막판에 일부 신흥개도국과 호주, 캐나다의 지지를 이끌어냈지만 라가르드의 독주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가르드 총재는 내달 5일부터 5년 임기를 시작한다. 그는 "모든 회원국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IMF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최선의 목표를 두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라가르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통으로 정치, 외교에도 강한 인물로 통한다. 25년간 미국 시카고 소재 법무법인 베이커 앤든 매킨지에서도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조직을 이끌었고 영어에도 능통할 뿐 아니라 금융시장 월가의 사정을 속속들이 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국제 금융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돋보이는 모습을 보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로부터 2009년 유럽 최고의 재무장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유럽국가들은 라가르드 신임 총재가 탁월한 위기 극복 능력을 크게 발휘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며 환영했다.
◆그리스사태 해결이 첫 도전=파이낸셜타임스(FT)는 라가르드가 당장 직면한 과제는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 해결을 꼽았다.
프랑스 은행들이 그리스 부채에 대한 익스포져(노출채권액)가 가장 많은 상황에서 프랑스 출신인 그가 얼마나 중립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국제결제은행에 따르면 프랑스 금융기관들의 그리스 익스포져 규모는 총 567억 달러로 가장 많다. 이에 따라 그리스의 디폴트(채무불이행)을 막으면서도 프랑스 은행들이 손실을 보지 않도록 하는 묘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에스와 프라사드 코넬대 교수는 "라가르드가 우선으로 풀어야할 숙제는 그리스 재정위기가 더욱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그리스가 휘청거릴 때 그가 직접 개입해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IMF 총재로 선출된 직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그리스 야당은 그리스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재정긴축안을 지지해야 한다"면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럽 출신이 IMF 총재를 맡고 미국인이 세계은행 총재를 맡는 오랜 관례가 공고하게 유지됐던 점에 반대하며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를 지지했던 신흥개도국들을 어떻게 끌어안고 가느냐도 풀어야할 숙제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어빈드 서브라마니언 선임 연구원은 "신흥개도국들을 설득하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나라마다 생각이 다른만큼 각각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신흥개도국들의 발언권 확대 요구를 무리없이 처리해 나가고 같은 프랑스 출신인 스트로스 전 총재가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실추된 IMF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도 과제다.
이현정 기자 hjlee303@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