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씩 급성장… 후발주자들 ‘정관장’ 따라잡기
특유의 씁쓸한 맛이 꼭 인생의 쓴 맛과도 닮아 있다. 진한 풍미는 달관자가 음미할 수 있는 인생의 깊이를 연상케 한다.
홍삼 얘기다. 수삼을 쪄서 말린 이 붉은 인삼은 향이나 맛에서 거부감이 덜하고 몸에도 좋아 최근 ‘건강식품 종결자’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알로에나 클로렐라 등과 같은 건강식품들은 이제 저만치 밀려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홍삼산업 시장 규모가 1조3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20세기가 ‘블랙 골드(Black Gold·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블루 골드(물)’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삼의 무한한 가능성을 본다면 ‘레드 골드’라고 불릴 날이 머지않았다. <편집자 주>
‘몸에 좋은 식품=홍삼’이란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회사원 이영우(30·남)씨는 몇 달 전부터 홍삼을 먹기 시작했다. 야근의 연속으로 인한 피곤함이 계속되면서다. 기운 차리는 데는 홍삼이 최고라는 추천을 여러 군데서 받았다.
이씨는 “가격이 좀 비싼 것 같지만 확실히 보약으로서 제값을 하는 것 같다”며 “홍삼을 복용한 다음부터는 피로가 해소되고 기력을 차린 것 같다”고 말했다.
선물용으로도 인기다. 건강식품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아이템인데다 ‘비싸고 귀한 홍삼’이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홍삼이 인기를 끄는 건 꾸준히 지속되는 웰빙 트렌드와 한방식 건강식품 이미지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홍삼은 나이 든 사람들이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변하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호응이 높아지는 추세다. 최근 어린이용 홍삼 시장의 성장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웅진식품 마케팅본부 윤철중 담당자는 “비타민류를 제외하고는 홍삼만 뜨고 있다”며 “홍삼 제품의 1인당 수요는 2000년 220g에서 2009년 480g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신종플루, 구제역, 조류독감 등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면역력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데다 소득 증가 및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점도 홍삼시장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천지양 홍보팀 김태웅 차장은 “홍삼은 지난해 신종플루 여파 때 큰 인기를 끌었다”며 “환절기나 건강을 잃기 쉬운 장마철은 물론 명절에도 잘 팔리는 대표적 건강식품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면역력 증진, 항암 효과, 원기 회복 등 몸에 좋은 홍삼이 발휘하는 효능은 뛰어나다. 김도환 태현한의원 원장은 “홍삼은 기운을 돌게 하는 대표적인 약재다.
진세노이드 성분이 기운을 북돋아 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줘 몸을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며 “따라서 면역력을 강화시킴에 따라 암 발생을 막아줄뿐 아니라 통증 완화에도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체질에 맞게 복용했을 경우”라고 못박았다.
홍삼이 건강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얘기다. 김 원장은 “반대의 경우 부작용을 초래,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기운이 너무 강한 사람, 피부가 까맣고 마른 사람들에겐 홍삼이 잘 맞지 않는다. 반드시 한의원에서 처방을 받아 자신의 체질을 제대로 알고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발효홍삼도 나오고 있다. 홍삼을 미리 발효시켜 체질과 몸 상태와 관계 없이 누구나 사포닌이 지닌 기능을 온전히 체내에 흡수시킬 수 있게 한 것이다.
서형주 고려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사포닌을 흡수하기 좋은 형태로 전환한 물질이 발효홍삼으로 일반 홍삼에 비해 흡수율이 좋고 생체 이용률도 탁월하기 때문에 효능효과도 일반 홍삼에 비해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래서 “홍삼 효능을 못 보던 사람도 발효홍삼을 먹으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차별화된 상품 인삼공사 위협
국내 건강기능 식품은 최근 5년간 연 평균 8.8%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특히 홍삼 제품은 2005년부터 매년 10%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홍삼시장 규모는 올해 약 1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1996년 홍삼 전매 폐지와 더불어 업체들이 속속 뛰어들고 있다. 2006년부터는 대기업이 홍삼시장을 노크하고 나섰다. 강력한 파워를 과시하는 1위 업체는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 전체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09년까지 7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농협 ‘NH한삼인’이 5%안팎의 점유율로 같은해 1130억원 매출을 기록하며 뒤를 잇고 있다. 나머지는 천지양, 동원F&B, 웅진식품, 풀무원건강생활, CJ제일제당, 한국야쿠르트, 대상웰라이프 등 10~15개 업체가 100억~300억원 매출을 올리는 정도다. 아직 미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후발 주자들의 기세가 무섭다.
뛰어난 기술력과 좋은 삼 수급력을 무기로 한국인삼공사의 독주를 위협하고 나섰기 때문. 이들은 홍삼 전매 폐지 후 1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독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프리미엄을 깰 때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농협은 2002년 홍삼 브랜드 NH한삼인을 만들었다. 조합원 및 회원농협들과 직접 계약 수매한 100% 국내 고려인삼을 원료로 하며 안정적 조달이 가능하다. 홍삼뿌리 제품의 경우 자체 검사가 아닌 ‘농협중앙회인삼검사소(정부지정 검사기관)’의 철저한 검사를 통한 제품만 유통시키고 있어 높은 신뢰도를 자랑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권고하는 우수건강식품제조기준인 최첨단 GMP 가공 시설을 갖춘 공장에서 대량의 홍삼을 생산할 수 있다. 6년근 홍삼 제품 ‘뿌리삼’ ‘홍삼정골드’ ‘6년근 홍삼순액’ 등이 있다.
천지양은 국내산 홍삼만을 사용한 진한 홍삼농축액 제품 ‘사포닌 골드’와 고형분 3%의 천지양 적년근으로 정성껏 달인 홍삼 달임액 ‘홍삼 순수’, 고함량·고농축 홍삼정 ‘고려홍삼정’을 내놓았다. 4년근에 집중하는 양상이며 진안 인삼 및 홍삼의 생산·연구·유통·수출 분야의 통합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동원F&B는 2007년 홍삼 전문 브랜드 ‘천지인 홍삼’을 내놓았다. 국내 최고의 홍삼 장인들을 영입해 지난해 천안공장을 준공하는 등 홍삼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생산되는 모든 홍삼을 공장 내 별도 건립한 태양광 건조장을 이용해 100% 자연 건조함으로써 농축액의 빛깔을 살렸다.
증삼 과정에서는 자사만의 3000기압 초고압 공법으로 수삼을 처리해 품질을 향상시켰다. 여기에 ‘홍송조화건조’라는 단계를 추가, 시베리아 연해주의 해발고도 1000m 이상에서 120년 이상 자란 잣나무인 홍송을 조화건조 과정에 활용해 홍삼 고유의 향을 더욱 깊게 했다.
지난해 200여 개 매장에서 170여 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웅진식품은 특허를 보유한 발효홍삼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장쾌삼’은 한국인의 25%가 사포닌을 흡수하지 못한다는 식약청의 연구 결과에 착안, 홍삼을 미생불로 발효시켜 체내 흡수율을 높인 발효홍삼 브랜드. 6년근 홍삼으로 제작한 프리미엄 홍삼라인으로 지난 1월 ‘장쾌삼 궁’과 ‘장쾌삼 본’을 출시했다.
발효홍삼을 마시기 좋은 30ml로 담아낸 ‘장쾌삼 발효홍산 진액’, 국내 식품업계 처음으로 세계3대 디자인어워드 ‘레드닷’과 ‘IF어워드’를 수상한 세련된 디자인의 ‘장쾌삼 청와대’도 있다.
풀무원건강생활은 ‘그린체 홍삼진효원’·‘풀무원녹즙 아침홍삼’을 선보였다. 바른 홍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엄격하게 관리된 우수농산물관리 인증(GAP) 인삼, 사포닌 파괴를 최소화해 홍삼의 유효 성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는 ‘알파진공건조법’을 적용해 기존 제품들과 차별화를 뒀다.
GAP 인증 친환경 인삼은 재배 과정의 농약 사용뿐 아니라 토양, 종자, 비료, 양분, 수질 관리를 통해 관리되며 전체 인삼 재배량에서 약 1% 미만 정도만이 출하될 정도로 희소성이 있다.
알파진공건조기술은 저온의 진공 상태에서 단시간에 인삼을 건조시키는 방식으로 일반적 열풍건조법에 비해 사포닌 열 변성률이 현저히 낮아 양질의 사포닌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다. 이 기술은 현재 특허 출원 중에 있다. 2014년까지 업계 2위권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건강음료 ‘한뿌리’시리즈를 확대, 2005년 4년근 홍삼 한 뿌리를 통째로 갈아 만든 ‘홍삼유 한뿌리’를 출시했다. 기존 홍삼농축액 제품들이 사포닌 성분만을 위주로 추출해 많은 기능성 성분들을 유실했던 것과 달리 홍삼 한 뿌리가 지닌 영양 성분을 고루 함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삼을 분말 형태로 가공하는 ‘초미세 공법’의 기술력을 통해 영양소 보존과 섭취의 편의성을 높였다. 쉽게 소화 흡수되며 직접 달이는 불편 없이 몸에 좋은 홍삼을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했다. 초미세 인삼 가공법은 한국과 미국, 일본, 중국 등에서 특허가 출원된 상태. 국내외 학술발표를 통해서도 사례가 공유될 만큼 높은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홍삼 브랜드 ‘천삼맥’을 론칭하고 홍삼시장에 뛰어들었다. 천삼맥 홍삼은, 국산 고려홍삼 6년근 원료로 사용해 30종 이상의 사포닌이 함유돼 있다.
특히 GMP(우수건강기능식품 제조기준) 설비를 토대로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엄격하게 관리된다. 이 회사는 건강기능식품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쳐 올해 매출 1000억원을 목표하고 있다.
대상웰라이프의 ‘홍의보감’은 엄격한 품질관리를 거친 홍삼 브랜드. 연령별 세대별로 선택 가능한 다양한 제품군을 갖추고 있다. 홍삼 함량이 풍부한 ‘홍삼키즈’, 청소년을 위한 ‘더 브레인 홍삼틴업’, 국내산 6년근 홍삼을 함유한 ‘그대로 달인 홍삼’ ’연홍삼정’ ‘홍삼진액 골드’ 등이 있다.
이에 따라 홍삼 업계의 경쟁도 뜨겁다. 긴장감마저 넘쳐 ‘홍삼 대전’을 방불케 한다. ‘4년근 vs 6년근’ 마케팅으로 맞붙는가 하면, 어린이 및 실버 전용 제품을 출시하는 등 타깃층도 세분화하고 있다.
또 음용이 간편하고 캡슐, 환, 엑기스, 음료 등 다양한 타입으로 제품을 내놓고 있다. 홍삼업계 관계자는 “가격이 저렴하고 볼품 없는 외모의 4년근보다 잘 생긴 6년근이 더 선호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사포닌 함량이 비슷하고 가격 대비 효과가 거의 비슷하다”고 말했다.
업계는 홍삼이 성인 뿐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이 복용하기 쉽고 제품의 다양화로 더욱 친숙하게 홍삼을 접할 수 있어 앞으로도 성장세는 가파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외서도 환호하는 국가대표 브랜드
고대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서시(徐示)를 보내 찾게 했다던 고려인삼. 국내 인삼은 해외에서도 유명하다. 우리 인삼의 훌륭한 품질 경쟁력을 바탕으로 몇몇 홍삼 브랜드들이 해외 공략에도 나섰다.
농협은 NH한삼인을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일본,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도 수출하고 있다. 두바이나 유럽 등 새로운 해외 시장도 개척 중이다.
동원F&B의 천지인 홍삼도 세계 시장 진출에 탄력을 받고 있다. 지난 6월 초 개최된 세계적인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GNC의 프랜차이즈 컨벤션에 초청받아 해외 GNC 가맹주들을 대상으로 홍삼 제품을 선보였다.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GNC 유통망을 통한 글로벌 시장 개척에도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한편, 홍삼의 세계화에도 걸림돌은 있다. 국내 수요는 국내산으로 자급자족이 어려울 정도로 절대 수량이 부족한 상태다. 해외로 보낼 물량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다. 또 미국 및 유럽에서는 액체 타입이 아니라 환이나 정으로 만든 제품을 선호하는 문화적 차이도 장애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환 및 정 타입의 제품을 제조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이를 감수하며 모험에 나설 업체들이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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