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닥터K’ 김수경이 돌아왔다. 2010년 4월 7일 1군 명단에서 말소된 뒤로 430일만이다. 그는 1998년 신인왕 수상자다. 1998년 현대에 입단, 12승(4패)을 거뒀다. 당시 잡아낸 168개의 삼진은 신인 최다기록이다. 승승장구는 그 뒤에도 계속됐다. 1999년 184개로 탈삼진 타이틀을 챙겼고 2000년 18승을 거두며 다승왕에 올랐다. 정민태, 임선동, 조웅천, 위재영, 조용준 등과의 막강 마운드 구축으로 팀은 이내 ‘투수왕국’으로 불렸다. 성적은 12승을 거둔 2007년 뒤부터 내리막을 탔다. 공교롭게도 그 해 현대는 130억 원의 부채를 안고 몰락했다. 히어로즈의 김수경에게서 현대 시절의 위력은 재현되지 않았다. 2008년과 2009년 각각 3승6패와 6승11패로 부진했고 지난해 1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다. 대부분의 시간은 2군에서 보냈다.
기회는 다시 주어졌다. 김시진 넥센 감독은 “2군에서 꾸준히 열심히 했다. 아직 이전의 구위를 회복한 건 아니지만 1군에서 내 눈으로 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불러들였다”고 밝혔다. 이어 “주로 불펜에서 뛰게 할 계획이다. 좋은 내용을 보인다면 선발로 돌릴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복귀전에서 김수경은 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11일 목동 삼성전 4회 1사 구원 등판, 3.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15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3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두 번 모두 패전처리의 성격이 짙었지만, 무난한 투구를 선보였다.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늘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진다.”
이하 김수경과의 인터뷰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430일 만에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김수경(이하 김) 오랜만이라 긴장을 많이 했다. 어떻게 던져야할지 걱정도 됐고. 아직 구위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 불안했다.
스투 복귀전이던 11일 목동 삼성전에서 최고 구속이 136km였다.
김 만족스럽지 않은 속도다. 솔직히 1군행을 전달받고 깜짝 놀랐다. 2군에서 기록한 최근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일 강진 롯데 2군전에 선발 등판해 패전투수가 됐다. 4이닝동안 8안타와 4볼넷을 허용하고 8실점했다.
스투 올해 2군에서 10경기에 출전, 1승1패 3세이브 1홀드 평균자책점 7.36을 남겼다. 다양한 보직을 골고루 소화했는데.
김 선발, 중간, 마무리를 모두 체험했다. 마무리는 경험하지 못한 보직이라 조금 낯설었다. 젊은 투수들의 승리를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이 꽤 무거웠다.
스투 꽤 오랜 시간을 2군에서 보냈다. 조바심이 생기진 않았나.
김 스스로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공이 좋았다면 그랬겠지만 정황상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군에 올라갈 기량을 키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투 잇따른 부진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구속이 줄어들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조금씩 계속 떨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특정 부위가 아팠던 것도 아니다. 경기를 빠지지 않고 출전했다. 특별히 쉰 적도 없었다. (잠시 말을 멈춘 뒤)2군에만 계속 있다 보니 선수생명이 짧아질 것 같았다. 이대로 야구를 그만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재미도 없었고. 2군 경기를 마치면 늘 TV를 통해 1군 경기를 시청하고 잠에 들었다. 눈을 감을 때마다 늘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그만 둘 생각까지 하게 됐다.
스투 2군 홈구장인 강진은 서울과 꽤 멀리 떨어진 곳이다. 어려웠던 점이 많았을 것 같은데.
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가족을 보지 못했다. 일요일 저녁에 인천으로 올라와 하루를 함께 하는 것이 전부였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잠시 말을 멈춘 뒤)강진에서는 야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후 1시 경기에 나서면 4시 정도 되어 끝난다. 식사를 마치면 바로 1군 경기를 시청한다. 경기가 종료되면 바로 취침시간이다. 눈을 감을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걸까’라고 생각한 이유다.
스투 강진 시내로 나가 휴식을 취할 수도 있을 텐데.
김 읍내를 나가려면 10km 이상을 빠져나가야 한다. 가는 길도 번거로워 차라리 숙소에서 지내는 게 나았다.
스투 자주 만나지 못해 아내가 많이 서운해 하지 않나.
김 일부러 내려와 있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이해하는 편이다. 이번에 1군에 올라와 가족과 함께 지내게 돼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아내와 갓 태어난 아기를 매일 보고 있다.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게 참 행복하다. 마음도 한결 안정되고. 얼굴에서 진심 어린 미소가 나오는 것 같다. 아내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임신 때 태교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동화책도 읽어주고 동요도 불러줬어야 했다. 앞으로 만회를 위해 더 잘할 생각이다.
스투 2군에서 힘든 나날을 보낼 때 가장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면.
김 정명원 투수코치 등 코칭스태프다. 김시진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자주 전화를 하고 싶은데 선수와 감독의 사이라서 많이 망설여지게 된다. 그간 망가진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고생을 많이 했다. 보답을 해야 하는데 아직 한참 부족하다. 팀의 연패를 한 번 끊어 웃음을 전달하고 싶다.
스투 넥센은 올해 연패를 자주 당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 투수진이 대부분 어리다. 젊은 선수들은 분위기에 휩쓸리기 쉽다. 연패 상황에서 선발로 서는데 적지 않은 부담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소득은 있다. 실패 속에서의 노하우 터득이다. 나이가 젊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스투 출전한 1군 2경기에서 호투를 거듭했다.
김 마운드에 오르기 전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오랜만의 1군 무대라 타자를 어떻게 잡아야할지 고민됐다. 그런데 막상 부딪히니 몸에 베인 습관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빠른 공을 던진 건 아니지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스투 아직은 패전처리로 경기에 나서고 있다.
김 어떤 보직이든 관계없다. 1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스투 오랜만의 복귀라 마운드에 서는 각오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 매 경기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임한다. 111승 투수라는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언제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 주위에서 아직 32살이라 더 던질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 옆의 유망주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투 피칭을 꽤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김 ‘안타를 내줘도 2군밖에 더 가겠어’라는 생각으로 던진다. 마운드에만 오르면 힘이 난다. 타자와의 승부에서 피하고 싶지 않다.
스투 주 무기인 슬라이더가 이전만큼 통하지 않고 있다. 위력이 줄어든 까닭일까. 상대에게 쿠세 등의 약점이 읽힌 탓일까.
김 위력이 줄어들었다고 봐야 옳다. 직구 구속이 떨어지면 슬라이더의 위력도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빠른 구속을 갖춰야 꺾이는 각도 더 날카로워질 수 있다. 내 공은 구속이 떨어져 타자에게 커브로 보일 것이다. 상대가 약점을 파악했다는 점도 수긍된다. 하지만 왜 알면서도 못 치는 공이 있다고 하지 않나. 모든 원인은 내 자신에게 있다.
스투 구속 증강을 위해 따로 신경을 기울이기도 했을 텐데.
김 세게도 던져보고 하체 힘도 길렀다. 하지만 구속은 늘 제자리였다. 생각을 할수록 스트레스만 쌓였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주어진 무기를 가지고 상황에 맞게 던져야겠다고. 마음을 비우고 타자를 상대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스투 공교롭게도 부진은 팀이 현대에서 히어로즈로 바뀌면서부터 시작됐다.
김 미스터리다. 구단 내 현대 시절의 분위기가 아직 남아있다. 당시 코칭스태프들이 그대로 선수들을 키우고 있고 이숭용, 송지만과 같은 선배들도 건재하다. 팀이 어려울 때 내가 주축 역할을 해내지 못해 답답하다. 연패를 끊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는데 몸이 이전 같지 않다. (잠시 말을 멈춘 뒤)솔직히 성적이 부진한 뒤로 팀보다 나를 더 먼저 생각하게 됐다. 선배로서 후배들을 다스리고 챙겨줘야 했지만 그럴 여유가 나지 않았다. 최근 4년간 자리도 잡히지 않았고. 그 역할을 해주지 못해 후배들에게 많이 미안하다.
스투 함께 뛰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이 힘을 얻지 않을까.
김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다. 그들에게는 목표가 있다. 마음을 비워야 하는 나와 처지가 다르다. 처음 2군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적응에 애를 먹었다. 그들과 똑같은 마음을 품고 공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가 갖춰야 할 자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마음을 텅 비웠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스투 그런 마음을 어떻게 다잡고 있나.
김 시즌 전 전지훈련에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덤비자고. 보직은 무엇이든 관계없다. 마운드에서 어떻게 던지느냐가 더 중요하다. 4년 동안 벼랑 끝에서 지냈다. 이렇다 할 성적도 내지 못했다.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간 부진을 만회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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