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지난 5월 12일. 두산은 KIA와의 원정 2연전을 모두 내줬다. 서울을 향해 달리는 버스에서 김경문 감독은 창밖을 바라보다 구단 직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감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직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김 감독은 넌지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외로움과 싸우는 직업인 것 같아.”
김경문 두산 감독이 13일 전격 퇴진했다. 외면상의 이유는 성적 부진. 그는 2004년 취임 뒤 지난해까지 팀을 6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한국시리즈도 3차례 밟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대표팀의 9전 전승 우승을 이끌기도 했다. 하지만 역대 8번째 500승 이상 감독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우승을 향한 열망은 올 시즌 남달랐다. 프로야구 미디어데이에서 김 감독은 "선수단, 스태프들이 우승의 필요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 결과로 이야기하겠다”며 비장함을 드러냈다.
김 감독의 선수단 운영은 강훈련으로 대변된다. 선수들을 끊임없이 압박한다. 주전선수도 언제 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 무명선수를 과감하게 기용, 팀 내 경쟁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화수분 야구.’ 이종욱, 김현수, 오재원, 최준석, 양의지 등이 대표적인 수혜자들이다.
하지만 그 색깔은 조금씩 달라졌다. 구단 측은 현금 10억 원과 왼손 유망주 금민철을 넥센에 내주고 이현승을 데려왔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거물 용병 더스틴 니퍼트를 영입했고 일본프로야구 야쿠르트에서 뛰던 이혜천마저 복귀시켰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위해서였다.
김 감독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감독 선임 당시에도 선수단에 전념할 것을 바라는 구단 측과 마찰을 빚었다는 루머에 휩싸였다. 그래서 양승호 당시 고려대 감독이 새 사령탑에 오를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한 올 시즌. LG와의 잠실 개막전에서 4-0으로 이겼지만 김 감독은 안심하지 않았다. 당시 화두는 ‘4월 승부론’이었다. 대다수 감독들이 평준화된 전력을 근거로 4월 동안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둬야만 우승을 바라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4월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매달이 고비”라고 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두산은 4월 한 달 동안 13승7패1무로 2위를 달렸다. 그러나 선수들의 부상과 경기 외적인 악재가 겹치며 5월 한 달간 전체 꼴찌인 5승17패를 거두는 데 그쳤다. 14일 현재 23승32패2무로 7위까지 주저앉았다.
사실 성적 부진은 그의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간 남긴 성과만 놓고 봐도 그러하다. 김 감독은 OB 포함 역대 두산 감독 가운데 김인식 감독에 이어 두 번째로 장기간 팀을 다스렸다. 자유계약선수(FA)나 타 팀 선수 영입에 소극적이었던 구단의 지원에도 불구 선수단을 강하게 변모시킨 덕이었다.
하지만 특유의 매섭던 지도력은 올 시즌 다소 힘을 잃었다. 선수단의 저하된 사기 탓이 컸다.
두산은 시즌 전 연봉협상에서 잡음에 시달렸다. 특히 핵심멤버들의 불만을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한 선수는 “포스트시즌에서 그렇게 고생했는데 협상이 아닌 통보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다른 선수도 “스프링캠프가 다가올 때마다 재촉이 심해졌다”며 “‘내년에 챙겨주겠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 야구관계자는 “김 감독이 자신의 책임이 아닌데도 불구 선수들에게 많이 미안해했다”고 밝혔다.
잇따른 야구 외적인 사고도 빼놓을 수 없다. 선발로 뛰던 김명제는 음주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고 지난해 방출 통보를 받았다. 마무리로 뛰던 이용찬은 지난해 9월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됐고 임태훈은 스캔들 파문으로 그라운드에 서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 관계자는 “김 감독이 선수들의 잇따른 사고에 무척 힘들어했다”며 “앞서 구상한 카드의 어긋남보다 애제자들에 대한 실망 때문이 더 크다”라고 전했다.
그만의 지휘 능력이 힘을 잃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두산 한 선수는 “어느 순간부터 김 감독의 압박이 덜해졌다”고 전했다. 다른 선수는 “최근 기운이 너무 없어보였다”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이상하게 죄송스러웠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사퇴하는 것이 선수들을 서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 올 시즌 포기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야구 스타일대로 과감하게 스스로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남겨진 선수들에게는 여느 때처럼 숙제가 안겨졌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