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였다. 저축은행을 상대로 한 사상 초유의 청문회. MB정부 들어 첫 청문회였지만 새롭게 드러난 것도, 책임질 사람도 밝혀지지 않았다. 향후 대권 향방의 가늠자가 될 4ㆍ27 재보궐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전 정권과 현 정권의 책임이 얽혀 있는 문제를 청문회로 풀어보겠다고 정치권이 나설 때부터 알아봤다. 결론이 없으리란 것을. 10여년간 금융권을 호령했던 거물급 인사들이 빠짐없이 증인으로 나와 앉은 모습을 보고도 예상했다. 그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저축은행 사태의 책임이 돌아가지 않으리란 것을. 자기 발로 나와서 책임을 뒤집어 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번 청문회는 누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선 정치권은 손해 본 게 전혀 없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짚을 것은 짚었고, 할 말은 했다. 알맹이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국회의원이 수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문회장이 재판정도 아니지 않나. 문제점은 드러났으니 앞으로 금융당국과 감독당국이 이를 감안해 정책을 펴나가면 되는 것이다.
금융 사령탑들은 부실 책임의 짐을 내렸다. 청문회에 불려나온 모양새가 사납기는 하지만 감수할 만했다. 재임 당시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성과 저축은행에 대한 검사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던 사정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청문회까지 겪었으니 더 이상 무슨 책임 추궁이 있겠는가. IMF 환란 사건의 정책 담당자들이 모조리 무죄 판결을 받았듯 정책적 판단은 사법처리의 대상도 아니다.
향후 정책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 저축은행의 대형화가 문제라고 하니 대형화가 아닌 쪽으로 가면 되고, 88클럽이 잘못됐다니 이를 없애든지 기준을 강화하면 된다. 검사 인력이 부족한 것은 늘리면 되고, 공시를 제대로 안 하는 문제는 공시 주기를 단축하고 과태료를 대폭 올리는 것으로 해결하면 된다. 부실화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사주고, 만기를 연장해주면 된다. 상장 저축은행에 대한 국제회계기준(IFRS) 적용도 융통성 있게 하겠다니 당초 계약을 변경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청문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저축은행의 부실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온 국민에게 알렸고 저축은행 업계가 반발할 처지도 아니니 밀어붙이면 그만이다.
등장인물들이 누구는 명분을, 누구는 실리를 챙긴 청문회다. 이 정도 성과라면 청문회를 여느라, 받느라 고생한 게 아깝지 않을 것이다.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실리를 챙긴 사람들은 따로 있다. 바로 저축은행에 대해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다. 정치적 판단이란 것이 원래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누구와 누구가 만났고 전화통화를 했는지 정색을 하고 따지거나 의혹을 제기하면 곤란해질 사람들이 왜 없겠는가. 이번 청문회에서 화살을 완전히 비켜갔으니 그들도 안심이다.
금융당국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올해 상반기에 몇 곳, 하반기에 몇 곳이 부실화될 것으로 보고 적게는 10조원에서 많게는 17조원까지 돈이 들어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자칫 살생부가 될 수도 있으니 매우 조심스럽게 그리고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다. 상반기는 거의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하반기는 어찌될지 모른다. 어떠한 판단이 개입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부산저축은행 계열 5개 저축은행이 무더기로 문을 닫은 후 '대책반장'이 한소리 들었다는 후문까지 들려오니 더욱 그렇다.
김헌수 부국장 겸 증권부장 khs324@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