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한동안 잠잠했던 ‘기업 쪼개기’ 바람이 다시 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3월 26일자)에서 시장조사업체 샌퍼드 번스타인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요즘 기업 분할 소문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는 제약업체 화이자의 경우 소문대로 여러 부문으로 쪼개지면 화이자는 연간 매출 규모가 670억 달러(약 74조7000억 원)에서 기껏해야 400억 달러로 줄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세계 최대 제약업체 화이자는 비제약 부문인 영양, 소비자 건강, 동물 건강, 캡슐 제조는 물론 거대한 기존 제품 부문도 떼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그룹은 올해 들어 지금까지 개별 상장사로 분할된 기업 규모가 총 920억 달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총 540억 달러 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것으로 이런 추세대로라면 지난 2007년 역대 사상 최대 규모인 2340억 달러도 넘어서게 된다.
올해 들어 지금까지 가장 규모가 컸던 기업 분할 사례는 이탈리아 자동차 제조업체 피아트다. 피아트는 180억 달러의 가치가 있는 트럭·트랙터 사업부를 분사했다.
올해 들어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기업 분할 사례는 모토로라의 단말기 제조 부문으로 가치가 100억 달러에 이른다.
전형적인 복합기업 ITT는 최근 방위산업, 정보통신(IT), 물처리 사업부를 분할하고 소규모 엔지니어링 부문만 남겨놓았다.
기업 분할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일례로 멕시코 억만장자 카를로스 슬림은 그가 이끄는 복합기업 카르소의 광업 부문인 미네라 프리스코를 분사시키고 있다. 미네라 프리스코의 가치는 70억 달러에 상당한다.
기업 쪼개기 바람이 새삼 일고 있는 것은 왜일까. 무엇보다 매각하고 싶은 사업부를 짭짤한 가격에 사겠다고 나서는 기업이나 투자자가 없기 때문이다. 일례로 호주의 식음료 그룹 포스터스는 와인 사업부를 매각할 계획이지만 오는 5월까지 적당한 가격에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이 없으면 아예 떼어낼 참이다.
이른바 ‘복합기업 할인’도 기업 쪼개기 바람을 부채질하고 있다. 복합기업 할인이란 증권시장에서 특정 복합기업의 가치를 각 사업부의 총가치보다 낮게 산정한다는 뜻이다.
씨티그룹은 루프트한자항공의 경우 기내 서비스 사업 부문을 분사하면 두 사업부 가치가 모기업 시가총액의 두 배로 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씨티그룹에서 금융전략 부문을 이끌고 있는 카스틴 스텐디베드는 “복합기업의 각 사업 부문을 동종 업계의 다른 기업 가치와 비교해본 결과 9% 저평가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복합기업이 기업 분할을 발표하기 20일 전부터 발표 후 60일까지 모기업과 분할 기업의 총 가치는 평균 8%포인트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980년대 기업을 분할할 경우 해당 경영진이 각기 맡은 기업들의 필요성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오늘날 복합기업에 대한 시각은 상당히 실용적으로 바뀌었다. 시카고 대학 부스경영대학원의 스티븐 캐플란 교수는 “복합기업이라도 잘만 굴러가면 그대로 놓아둘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쪼개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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