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명의 아이들이 도로로 질주하고 있다. 길은 막다른 골목이다. 그 중 첫째 아이가 무섭다고 한다. 곧 둘째 아이도 무섭다고 하고, 셋째, 넷째, 다섯째…… 모두 13명의 아이가 무섭다고 외치면서 도로로 질주하고 있다.
13명의 아이가 외치는 불안과 공포를 표현한 이상의 시 '오감도' 중 일부이다. 시가 끝날 즈음 돌연 길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고, 13명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다고 말한다. 혼란스럽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남은 것은 무엇이며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로 13명의 아이들에게 선명하게 각인된 '공포', 그것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 그것이다. 1930년대에 발표된 이 시가 여전히 문제적인 이유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이만큼 잘 표현한 경우도 드물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공포에 대비하고자 하는 심리적 기제를 가지고 있다. 이유를 알 수 있는 공포는 곧 그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공포는 그 이유 때문에 더욱 공포스러운 법이다. 그들은 공포에서 벗어나고자 질주하지만 당분간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3월이 시작된 지 20여일이 지났다. 우리에게 3월은 특별하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초ㆍ중ㆍ고ㆍ대학 모두 한 해 새 학기의 시작은 3월이다. 아이들은 새 교복을 입고 새 친구들과 만나 새 교과서로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이런 3월에 새로 시작한 것이 또 하나 있다. 고등학교에 갓 입학한 자녀를 둔 부모에게도 바야흐로 두려움과 공포가 시작되는 것이다.
4년제 대입 전형 숫자가 3600여개라고 한다. 3600여개의 대입 전형은 그 숫자만으로도 부모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다 준다. 도대체 우리 아이의 대입을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며 알아야 할 전형은 얼마나 될 것인가. 대교협 차원에서 대학 입학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 제공에 노력하고 있다지만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모두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줄이고 사교육에 올인하며, 각종 대입 설명회에는 학부모들로 넘쳐나고 있다.
다양한 입시제도, 특히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두려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그 위력이 더욱 강해진 학교생활기록부는 성적뿐만 아니라 각종 수상 경력, 자격증 및 인증 취득 사항, 창의적 재량활동, 특별활동 상황, 봉사활동 실적, 교외 체험학습 상황 등에 대한 기록을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 항목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 수많은 항목을 챙기기 위해 아이뿐 아니라 부모들도 방향을 모른 채 질주하고 있다.
부모들이 대학 입시에 관한 정보를 나누자고 개설한 모 입시 정보 사이트에 이틀 동안 8000여명의 부모가 회원 가입을 했다고 한다. 부모들의 답답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도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그 해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삶과 미래를 기준으로 학생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대입 전형은 간소화돼야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쉬우며, 학교에서 지도가 가능한 입시 전형이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구조화된 의미 체계로 다가가는 것이다. 다양한 입시 전형을 제공한다는 점도 의미가 있겠지만 다양한 입시 전형과 복잡한 입시 전형은 동의어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최미숙 상명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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