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위대한 탄생> 글로벌 오디션 중국 편 때, 오디션이 열리는 청도까지 무려 36시간이라는 긴 여정 끝에 도착한 연길 지역의 도전자들을 보고 있자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기억이 납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무작정 달려온 열정들이 부럽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모한 도전이라는 생각에 안쓰러웠거든요. 대부분 노래 한 곡 부르고는 다시 돌아가야 할 텐데 꽤 부담이 되었을 교통비하며 소모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그런데 긴 여행으로 초췌해진 도전자들 사이에 백청강 씨가 있었습니다. 이 오디션에 목숨을 걸게 된 이유가 소수 민족인지라 중국에서는 기회를 얻기가 너무나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었죠?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는 노래는 김경호의 ‘아버지’이고 취업 중인 부모님과 어릴 적부터 떨어져 지냈기에 꼭 한국 행 본선 티켓을 획득해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며 짓던 처연한 눈빛도 생생합니다.
군더더기 없는 편집이 살렸네요
‘가슴 깊이 묻어도 바람 한 점에 떨어지는 저 꽃잎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눈물이 나’. 애창곡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늘 부모님을 그리워했을 백청강 씨. 그래서 ‘멘토 스쿨’ 김태원 캠프 중간 점검을 마친 청강 씨가 아버지를 만나러 간다며 천안 행 전철에 오르는 순간, 이제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고 함께 눈물, 콧물을 쏟을 준비를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요. 두 분의 만남은 제가 예측했던 신파조가 아니라 시종일관 웃음이 흐르는 유쾌한 만남이었습니다. 아들이 한국 가수의 문턱에 한발 다가섰다는 사실보다 박칼린 씨를 만났다는 것이 더 신기하신 아버지 백명덕 씨는 넌지시 “곱대?”하고 물으셨고 아들 또한 “곱대”하고 수줍은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분위기는 마치 소녀시대를 두고 나누는 청년들의 대화 같았어요. 아들은 “앙까?(알아요?) 어떻게 앙까?”하며 박칼린 선생님의 위용을 재차 확인하는가 하면 아버지는 천하의 박칼린 씨가 아들을 1등으로 뽑았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시기도 했죠. 아버님의 반응이 재치 있으시더군요. “박칼린이 너 1등 줬다고? 이태곤이 안 주고? 거, 이태곤이 잘 하더라.” 속으로는 아마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로 뿌듯하셨을 거예요. 하지만 백명덕 씨는 예전의 우리네 아버지들이 그랬듯 결코 내 자식만 추켜세우는 우를 범하지 아니 하셨습니다. ‘가만히 서서 노래해도 시선이 가는 친구’라는 박칼린 씨의 평가를 나중에 TV로 보시고는 감개무량해 하셨겠지만 아들 앞에서는 담대하셨어요.
시청자 입장에서도 고기 한 점 구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청강 씨, 그러나 내도록 라면만 먹고 지낸다는 아들을 부여잡고 속 쓰린 표를 내셨더라면, 세 식구가 함께 모여 산 기간이 평생 1년이 채 안 된다는 가슴 저린 사연을 또 한 번 짚어가며 눈물 바람을 하셨더라면 어땠을까요? 최종 결정 무대에서 청강 씨가 들려준 ‘희야’의 감동이 다소 희석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양정모, 손진영 씨의 마지막 무대가 가져다준 감동 또한 훨씬 덜했을 수 있고요. 편집이 탁월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님이 남기신 편지를 구구절절 들려주지 않았고 끝까지 청강 씨의 슬픈 표정은 카메라가 잡지 않았으니까요. 감정의 과잉이나 강요가 얼마나 불필요하고 촌스러운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킨 군더더기 없는 편집이었다고 봐요.
자랑스러운 아들과 아버지, 다시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아버님께서 보이신 담담한 태도가 시너지 효과를 낸 겁니다. 요즘 들어 부쩍 TV 출연이 잦아진 연예인 가족들에게 청강 씨 아버님의 언행은 귀감이 되지 싶어요. SBS <스타부부쇼 자기야>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과 같은 본래 가족 동반 콘셉트의 프로그램은 물론 MBC <꽃다발>을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 연예인 가족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거든요.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자 망설임 끝에 얼굴을 공개하는 거겠지만 서로에게 윈윈인 가족도 있는가 하면 사실 출연 안 하느니만 못한 가족도 있기 마련이죠. 연습에 몰입 중인 청강 씨는 아마 못 보셨을 테지만 지난 번 KBS <승승장구>에도 청강 씨 아버님에 필적할 어머님이 나오셨답니다. 연기자 주상욱 씨의 어머님이셨는데요. 대한민국 배우 중에 아들이 몇 위일 것 같으냐, 당연히 1등이냐는 MC의 질문에 ‘절대 아니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시청자로서 왜 저렇게 어색한가 답답해하고 있다’고 하셔 좌중을 웃게 만드셨습니다. 주상욱 씨 본인은 괴로워하셨지만 시청자 입장에서는 최근의 <승승장구> 중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청강 씨 아버님과 상욱 씨 어머님이 자리를 함께 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군요.
얼떨결에 얻은 기회로 하루 아침에 스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과연 운이 좋았던 걸까요? 스스로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기회를 얻는다 해도 성공에 이를 수 없었을 겁니다. 청강 씨는 기회를 잡았고 이제 가수가 되기 위한 한 발짝을 내딛었습니다. 그간 지적받아온 비음을 짧은 시간 안에 개선해보인 청강 씨가 두께를 더하기만 한다면 지금의 음색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김태원 멘토의 조언을 가슴 깊이 새겨 최선을 다하리라 믿습니다. 마지막 결선 무대에 초대된 아버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저를 기쁘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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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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