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필수 기자]1조원. 사과 상자에 1만원권을 채우면 2억원이 들어간다니 만원짜리로 1조원을 채우려면 사과상자 5000개가 필요하다. 5만원권이라도 사과상자 1000개를 채워야 한다. 얼마전 여의도 백화점에 위치한 물류회사에서 발견된 만원권과 5만원권 한박스씩을 나란히 채운다면 박스 2000개가 필요하다. 웬만큼 큰 창고가 아니면 이 정도 분량을 넣기도 힘들다.
외국인이 10일 국내 증시에 물량폭탄을 던졌다. 코스피시장에서만 1조997억원 순매도다. 국내 증시는 순매도 금액을 박스에 담아 투하한 것처럼 폭격을 제대로 당했다. 전날 나온 4765억원 순매도에 1차 지지선이 무너졌던 코스피지수는 순식간에 2000선으로 밀렸다.
두달 가까이 봐 익숙해져서인지 굳건해 보이던 2000선의 견고함에 대한 믿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가 반발매수세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사정없이 팔아대는 외국인의 공포를 이겨내기란 쉽지 않다.
실제 외국인은 1조원 이상 순매도 후 대부분 일정기간 매도세로 돌아섰다. 특히 2008년 1월 중순, 3일간 3조원에 달하는 순매도 이후엔 약 3개월간 8조7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1조원 이상 순매도 후 바로 매수세로 돌아선 것은 한 기관에 의한 일방적 매도로 쇼크를 가져온 지난해 11.11 쇼크때 뿐이었다.
이때를 제외하곤 하루 1조원 순매도 이후 외국인의 순매도 분위기가 가장 짧았을 때도 3주를 갔다. 지난해 5월7일 1조2000억원이 넘는 순매도 직후였다. 당시 외국인은 5월10일부터 27일까지 4조2000억원 이상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어느 한 세력도 아니고, 당장 오늘 어떤 매매 패턴을 보일 것인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전 사례들을 참고하면 당분간은 매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실제 현재 분위기도 글로벌 자금은 신흥국 시장에서 선진국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이것이 그간 과도한 쏠림현상에 따른 되돌림 현상이든, 본격적인 이탈이든 단기간은 유출 흐름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다.
악화된 투심에 단기 이탈이 불가피해 보이는 외국인. 주말을 앞둔 투자자들 입장에서 즐거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결과에 증시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집트가 여전히 시끄럽고,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금리인상 압박이 강하지만 글로벌 경제환경은 나아지고 있다. 유럽 리스크는 확실히 완화됐고, 미국경제의 회복세도 이제는 크게 우려할 수준은 넘어선 상태다. 전문가들도 여전히 추세의 하락반전보다는 상승추세속 조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외국인이 하루 1조원 이상 순매도 한 이후 코스피 추세를 살펴보면 하락장으로 이어진 것보다 바닥을 찍고 반등한 경우가 많다. 물론 1조원 순매도는 단기 조정의 빌미는 됐다. 단기간 2000선 붕괴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런 때가 기회인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밤이 깊어가는 것은 새벽이 그만큼 가까워 온다는 얘기도 된다. 단기 급락은 언제나 기회였다.
다만 종목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일단 외국인 보유비중이 높은 종목보다는 국내 기관이니 개인 비중이 높은 종목이 유리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국인은 한번 팔기 시작하면 상당기간 이를 지속한다. 외국인의 매물은 반등의 장애물이다.
한편 이날 새벽 뉴욕 증시는 혼조세로 마감했다.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설이 오보로 끝났지만 퇴진에 대한 기대감이 약세출발한 증시를 소폭 끌어올렸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일대비 10.60포인트(0.09%) 하락한 1만2229.29에 장을 마쳤다. 하락출발했던 S&P500지수는 0.99포인트(0.07%) 오른 1321.87, 나스닥지수는 1.38포인트(0.05%) 상승한 2790.45를 기록했다.
전필수 기자 phil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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