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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떡장수 부부 그들의 성공신화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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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아이에프 김철호 대표 & 최복이 소장 부부의 ‘희망가’

호떡장수 부부 그들의 성공신화는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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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죽’ 기반 4개 브랜드 1200여개 가맹점 운영 ‘부창부수’ 멋진 하모니

2002년 초가을. 아침 6시, 부부는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함께 출근길에 나섰다. 도착한 곳은 서울 종로구 연건동 후미진 골목의 2층 죽집. 재료 준비를 마친 부부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3번 출구로 나갔다. 손에 들린 것은 잡기 쉽게 접은 전단지. 정장차림의 젊은 부부는 행인 한 명 한 명에게 90도로 인사하고 눈을 일일이 맞추며 전단지를 건넸다. 간절했기에 주변의 시선 따윈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기를 3개월여. 정성스러운 부부의 손길 덕에 하나 둘 손님들이 찾아왔고, 그들은 가게 인테리어와 죽의 양, 맛에 감동했다. 하루 많으면 스무 그릇 팔던 것에서 5개월 후엔 애초 목표했던 100그릇 판매의 꿈을 이뤄낼 수 있었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죽’이란 아이템으로 일궈낸 한식 프랜차이즈 브랜드 ‘본죽’ 신화의 시작이었다.

‘신의 아이템’을 골라 대박을 낸 이들이 바로 본아이에프의 김철호 대표와 본브랜드연구소의 최복이 소장 부부다. 스무 살, 스물하나에 대학 선후배로 만나 25년여를 함께 해온 부부는 서로에게 평생의 벗이자, 든든한 사업 동반자다. 출퇴근도 같이하고, 중요한 미팅도 함께 참석한다. 김 대표는 전체적인 회사 운영을 맡고, 최 소장은 메뉴 개발과 가맹점 교육을 챙긴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일심동체’인 셈이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미는 ‘부창부수(夫唱婦隨)’식 경영으로 본아이에프는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다. ‘본죽’을 비롯한 본국수대청, 본비빔밥, 본도시락 등 4개 브랜드의 안정적인 성장 속에 창업 8년 만에 가맹점 1200개를 돌파하고, 해외에까지 진출했다. 또 지속적인 가맹점 관리와 교육으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이례적인 한자릿수의 폐점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엔 한국프랜차이즈대상에서 대통령상도 받았다. 이번 대통령상은 한국프랜차이즈대상 제정 이후 처음으로 생겼으며 본아이에프가 첫 번째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실패와 좌절도 함께한 동반자


김 대표는 그간의 공을 모두 ‘아내’에게 돌렸다. 인터뷰 내내 옆에서 보기에 ‘닭살’일 정도로 아내인 최 소장에 대한 칭송(?)이 이어졌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아내는 가장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 온 삶의 가장 큰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업에 실패하고 모두가 그를 외면했을 때, 곁을 돌아보니 아내가 있었다고 했다.


호떡장수 부부 그들의 성공신화는 진행 중


사연을 들어보니 그럴 법도 했다. 일간지 광고개발부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돌연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후 인삼제조판매업 등의 사업을 시도하다 번번이 실패했을 때도 생계는 최 소장의 몫이었다. 그녀는 보습학원 강사, 과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세 아이를 키웠다.


김 대표가 목욕용품 사업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 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부도 처리되는 실패를 겪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살던 집도 넘어가 부부와 세 딸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음에도 묵묵히 삶의 무게를 함께 견뎌냈다. 또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그가 재기의 발판을 다지며 여대 앞에서 호떡장사를 하던 시절엔 말없이 옆에서 호떡을 구웠다.


그는 “본죽이 이만큼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도 아내의 공로가 컸다”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엔 죽 한 그릇을 만드는 데 30분도 더 걸려 손님들이 그냥 돌아가기 일쑤였죠. 또 여러 가지 종류의 죽의 주문이 한꺼번에 쏟아질 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더군요. 그래서 주문 즉시 죽을 쑬 수 있는 ‘표준화된 요리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해도 같은 맛을 내기 위해 메뉴를 개발하고 요리법을 체계화하기 위한 최 소장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김 대표가 외식 컨설팅 사업을 할 때 부설 요리학원에서 어깨 너머 배운 요리가 전부였다. 누가 가르쳐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그래서 최 소장은 6개월 동안 죽만 쒔다. 그 모습을 보고 김 대표는 “흡사 무엇에 홀린 사람 같았다”고 표현했다.


뜨거운 죽이 튀어 손가락이 데는 것은 기본. 칼질을 하다 상처를 입기도 해 최 소장의 손은 하루도 성할 날이 없었다. 오래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도 퉁퉁 부었다. 그렇게 1인분씩 모든 재료를 완벽하게 준비해 뒀다 주문을 받으니 10분에서 15분 만에 손님 앞에 즉석에서 끊인 죽이 놓일 수 있었다.


오는 말이 고우니 당연히 가는 말도 고왔다. 최 소장도 남편인 김 대표에게 더없는 고마움을 표했다. 칭찬도 ‘부창부수’가 따로 없었다. “말이 씨가 됐나 봐요. 대학시절 연애할 때 나중에 둘 다 취업하지 말고 구멍가게라도 좋으니 우리 일을 하자는 얘기를 늘 했었죠. 남편은 제가 내조를 잘 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제가 남편의 외조 덕을 보고 있죠. 남편과 함께 일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저는 남편의 칭찬과 배려로 매일매일 고래처럼 춤을 춘답니다.”


특히 홀어머니 밑에서 어려서부터 가장노릇을 해오며 힘들게 살아왔던 남편이기에 미울 때가 있어도 금방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뀌고 만다고. 그런데 왜 하고 많은 음식 아이템 중에 부부는 ‘죽’을 택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한 답변을 한마디로 일축했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란다.


최 소장도 남편과 함께 유명한 죽집을 돌아다니며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녀는 “양복에 넥타이를 맨 신사가 죽집에서 죽을 먹는 모습을 보고 ‘고급 메뉴’로서 죽의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본죽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일반인을 주 타깃으로 했다. 젊은이들에게도 영양식으로 충분한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도록 양을 늘렸다.


대신 적게 먹는 손님들을 위해서는 먹기 전에 미리 반 정도를 포장하거나 1인분을 세 개로 나눈 소포장으로 제공한다. 여기엔 “음식은 먹고 서운한 감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김 대표의 철학도 반영됐다. ‘맛있고 충분한 양의 한 끼 식사’가 바로 본죽이 만드는 죽인 셈이다.


한식 세계화는 민간이 총대 소신


승승장구하던 본죽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실패’는 있었다. 부부는 2002년 이후 해외시장 진출로 쓴 맛을 한번 경험했다. ‘한국식이 정답’이라는 생각은 해외시장을 잘 몰랐던 섣부른 판단이었다.


“무식해서 용감했다고나 할까요. 무조건 본죽을 세계적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최 소장은 “조금 더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며 “현지의 문화나 현지인의 입맛 등을 심도 있게 타진해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으로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고 했다.


일찍이 ‘한식의 세계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선두에 섰던 김 대표도 할말이 많은 듯 했다. “한식의 세계화는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입니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네요. 여기엔 정부와 민간이 역할이 구분돼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는 큰 그림을 그리고, 민간은 고유의 노하우로 실행에 옮겨나가야 합니다. 전쟁터라면 정부가 대포를 쏘고, 기업이 직접 소총을 들고 적진에 나아가 깃발을 꽂는 식이죠.”


그는 소형 전문화한 프랜차이즈로 해외에서 한식의 대중화를 실현해나가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유명 음식점들이 프랜차이즈로 세계화를 이뤘듯이 말이다. 철저히 현지인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맛에 맞게 메뉴와 조리법을 새로 개발할 생각이다.


교통 겪는 암환자 영양식 개발도


그는 또 한식의 세계화에 있어 “지켜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명히 구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것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 또 그렇다고 정체성을 잃어서도 안 된다는 의미다. 브랜드별 세부 전략도 이미 세웠다. 본비빔밥은 세계화 대표 브랜드로 선정,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전역에 진출할 계획이다. 본죽은 일본 시장을 타깃으로, 본국수대청은 면요리가 친숙한 중국 시장에, 본도시락은 테이크아웃 문화가 발달한 미국 시장에 집중 진출한다는 구상이다.


부부는 올해 해외 시장 공략과 함께 지난해 10월 론칭한 본도시락에 역량을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본죽과 마찬가지로 소규모로 창업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아이템으로 정착시켜 연내 100호점 이상 출점하는 게 목표다. 최 소장은 “즉석에서 고객이 반찬을 골라 쌀 수 있는 ‘웰빙 건강도시락’이 차별화된 콘셉트”라고 설명했다.


최근엔 연세 암센터와 손잡고 암환자 영양식단(죽)을 개발키로 했다. 본아이에프는 연세 암센터로부터 자료를 받아 레시피를 개발하고, 조리 방법, 전처리 방법 및 가공식품 개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암환자용 죽은 본죽 가맹점에서 판매된다.


김 대표는 “죽이 일반인들에게 웰빙 영양식으로 자리 잡은 데에 대한 보답으로 환자들의 입맛을 돋우고 체력을 회복하는 등 조금이나마 빠른 쾌유에 도움이 되고자 환자식 개발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맛있어 하면서 몸에 좋은 죽을 만드는 비법 개발은 최 소장에게 주어진 임무다. 대학로 죽집 운영 시절,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암환자가 최 소장이 만든 전복죽을 먹고 기력을 회복했을 때의 감동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본아이에프의 나눔경영
‘죽’ 쒀 ‘남’ 주는 중기 CSR 대표모델
“오랫동안 기아에 허덕인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영양식은 바로 죽이래요.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어요?” 아내의 이 한 마디에 김 대표는 무릎을 탁 쳤다. 건강식인 죽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배고프고 가난한 이들을 보듬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복지재단 ‘본사랑’은 이렇게 탄생했다.


최 소장은 지난 2009년 6월 본사랑이 본격 발족되며 이사장직을 맡았다. 남편이 실천했던 ‘죽 한 그릇에 담긴 정성의 미학’을 나눔을 통해 다시 한 번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본 사랑은 현재 배움사업. 나눔사업. 섬김사업 등 크게 세 가지의 사업을 중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달 400명의 소외계층에게 본죽을 지원하고 있으며, 취약계층 합동결혼식도 열어준다. 이밖에도 어린이재단과 함께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결식아동 100명에게 매달 1인당 5만 원씩 지원하고 있다.


최 소장은 본사랑의 활동을 ‘선순환의 나눔’이라고 설명한다. 나누면 소비자들로부터 감동과 신뢰를 얻고, 이를 기반으로 수익이 나면 나눔의 기회는 더욱 확대된다는 것이다.


해외 빈국에서 기아로 굶주려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보다 더 많은 양의 죽을 손쉽게 나눠줄 수 있도록 수분을 빼 가볍고 유통기한을 늘린 동결건조 죽도 개발했다. 진정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한 최 소장의 따뜻한 배려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본사랑의 활동은 ‘재능 기부’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바로 본쉐프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본아이에프 내 실력 있는 요리사와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바탕으로 취약계층에게 프랜차이즈 노하우를 나누고 그들의 창업을 도와주는 것이 주요 골자다.


김철호 대표에게 ‘본(本)’이란
맛·재료·양의 基本을 지킨다
김철호 대표는 삶에서나 사업에서나 늘 ‘본(本)의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켜 나가는 ‘꿈꾸는 죽 장수’다. 여기에서 본(本)은 맛, 재료, 양, 서비스 등 에 있어서 기본을 지키는 것이다. 모든 일에 기본이 있는 것처럼 죽 한 그릇에도 ‘본’을 담자는 의미다. 김 대표에겐 “기본이 성공을 부른다”는 신념이 있다. 요즘처럼 자기 잇속 채우기에 급급하고 손익계산이 철두철미한 시대에, 기본은 숱한 실패를 통해 깨달은 그의 철학이기도 하다.
“창업 초기엔 ‘본’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좀 더 겸손해졌다고나 할까요. 요즘엔 본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더욱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초심을 지키려 애쓴다. 여전히 ‘본’은 본죽이 끝까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이자 본죽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최 소장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음식의 본이 되고, 많은 가맹점주들에게 본이 되는 그런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소박한 생각이었단다. 하지만 역시 날이 갈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본사랑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책임감은 더욱 무거워졌기 때문이리라.


김철호 대표의 성공 레시피 6가지
1. 가맹점주가 제 1의 고객이다
2. 실패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으며,
그저 실패에서 넘어지는 법을 배우면 된다
3.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표시한다
4. 간절함이 있으면 성공한다
5. 음식은 상품이 아니라 정성이다
6. 전단지 한 장에도 정성을 담는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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