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아쉬운 패배였다. 하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아시아 축구의 미래를 보여준 명승부였다.
한국 축구 대표팀은 25일 오후 10시 25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가라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1 아시안컵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맞아 극적인 2-2 무승부를 일궈냈지만 승부차기에서 0-3으로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은 연장 후반 극적인 재동점골까지 터뜨렸지만 결국 승부차기에서 무릎을 꿇었다. 51년 만의 ‘왕의 귀환’의 꿈도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은 라이벌 일본을 상대로 수준 높은 경기를 펼치며 아시아 축구의 달라진 면모를 보여줬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를 대표하는 축구 강국이다. 각각 2002한일월드컵 4강과 16강에 올랐고,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16강에 동반 진출하며 아시아 축구의 발전상을 과시했다. 이는 유럽과 아프리카의 부진과 극명한 대비를 이뤘고, 그동안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본선 4.5장의 티켓이 과하다는 주장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이날 맞대결 역시 아시아 정상급 팀들 간의 대결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난 경기였다. 아시안컵 준결승전이라기보다 월드컵이나 유로 준결승을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실제로 이날 한일전에는 무려 10명의 유럽파가 뛰었다. 한국은 박지성(맨유) 이청용(볼턴) 기성용 차두리(이상 셀틱) 등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주축을 이뤘다. 과거 토트넘에서 뛰었던 이영표까지 포함하면 영국 프로축구 경력자가 5명이나 있는 셈이었다. 후반에는 독일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함부르크)도 교체 투입됐다.
일본 역시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 하세베 마코토(볼프스부르크) 우치다 아쓰토(샬케04) 등 독일 분데스리가 출신과 더불어 나가토모 유토(AC세세나) 가와시마 에이지(리에르세)까지 5명이 유럽에서 뛰는 선수였다. 조만간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할 오카자키 신지(시미즈)도 있었다.
이들 외에도 구자철(제주) 조용형(알 라이안)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 등 유럽 무대에서 뛰어도 손색없는 실력을 갖춘 선수가 즐비했다.
외형뿐 아니라 경기 내용 면에서도 탈아시아급이었다. 한국은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빠른 템포의 경기를 펼쳤다. 원톱 지동원(전남)과 2선의 구자철-박지성-이청용(볼턴)의 유기적인 스위칭 플레이도 돋보였다.
이에 맞서는 일본은 중원에서 짧고 빠른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높였다. 동시에 물흐르는 듯한 패스와 좌우 측면 수비수의 폭발적인 오버래핑으로 날카로운 공격력을 이어갔다.
한국과 일본 모두 개인 전술과 기량 면에서도 발전상을 보였다. 슈팅이나 드리블 기술은 물론 대인 마크 능력도 높은 수준을 자랑했다. 좁은 공간에서는 짧은 패스를 정교하게 주고받았고, 감각적인 2대 1 패스도 자주 선보였다.
경기 역시 박진감이 넘쳤다.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펼쳐졌다. 한국은 전반 22분 박지성이 얻은 페널티킥 기회를 기성용이 침착하게 성공시켜 선제골을 만들어냈다.
일본 역시 전반 36분 왼쪽 측면에서 찔러준 패스를 마에다 료이치(이와타)가 오른발로 연결하며 골망을 흔들었다. 득점 과정에서 나가토모의 번개같은 오버래핑에 이은 혼다의 예리한 침투 패스가 돋보였다.
팽팽하던 경기는 결국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전반 7분 이번에는 일본이 황재원(수원)의 파울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혼다의 슈팅은 정성룡(성남)의 손에 맞고 나왔지만, 득달같이 달려든 호소가이 하지메(우라와)가 재차 슈팅하며 골문에 밀어 넣었다.
패색이 짙어가던 연장 후반 15분. 한국이 기사회생했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내줬던 황재원이 재동점골을 뽑아내며 극적인 무승부를 일궈낸 것.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끝내 한국을 외면했다. 승부차기에서 한국은 연속 세 명의 키커가 차례로 실축하며 무릎을 꿇고 말았다.
비록 51년 만의 아시아 정상 꿈은 좌절됐지만, 한국은 세대교체와 더불어 다른 참가국과 구별되는 한 차원 높은 축구를 구사하며 미래를 향한 청사진을 그릴 수 있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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