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 이용하면 기부금 '착착'
카드 보험 펀드 등 '수익+선행' 재테크 상품 출시
'기부루트' 다양화·소비자 의식 전환에 긍정적
자선단체와 파트너십‥단발성 지원 극복해야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세계 무대에 '선진 한국'의 위상이 공고해지는 가운데 사회 성숙도의 잣대가 되는 기부도 특별한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행위에서 보편적인 생활습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9년 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하면서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의 변신도 기폭제가 됐다. 기업들은 이미지 개선을 위한 요식행위에 멈추지 않고 매출과 연계한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활동으로 반면교사가 되고 있고, 금융권에서는 투자자들에게 더 많은 수익을 담보한 기부형 상품을 내놓으며 나누며 부를 창출하는 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다양해진 채널..프로젝트형 문화로 확산= 이러한 기부 문화 확산에는 기부 방법의 다양화가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의 카드나 보험, 펀드가 기부전용 상품으로 만들어져 일상에서도 소액 기부가 가능하다. 여기에 특정 마트에서 쇼핑하다 남은 거스름돈이 기부금으로 쓰인다거나 특정 브랜드의 립스틱을 사면 그 판매금이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되는 등 소비 자체가 기부가 돼 일상적으로 기부체험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횡령비리로 기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들이 생겼지만 다행히 신뢰성을 갖추고 인지도가 있는 자선단체들에는 개인 정기후원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여서 눈길을 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총 모금액은 450억원으로 전년도 모금액인 325억원에서 60%나 증가했다. 개인후원자(월 2만원 기준)도 지난해보다 6만9000명이 증가했고, 18세 미만의 어린이 후원자들도 2006년 3100명에서 올해 1만 명으로 크게 늘었다. 굿네이버스도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새롭게 기부에 참여한 정기 기부자 숫자가 14만8849명으로 전년동기대비 1.6배나 증가했다. 2008년까지 1년에 1만명 개인정기후원 정도에 그친 것이 2009년부터는 10만명을 초과하면서 지난해까지 기부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영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본부장은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모금 방법이란 게 딱히 없고 자선단체가 만든 축하카드 등 상품판매에 의존했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온라인 송금부터 시작해 신용카드 결제, 기업제휴카드 등을 이용한 기부가 점차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기업 기부가 개인 기부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인데 개인기부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기업들도 최근 들어서는 단순한 기금 전달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참여형으로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부와 금융의 만남..'나눔 재테크'로= 기부 전용 카드의 경우 최초의 사례는 지난 2005년에 발매된 신한카드의 '아름다운 카드'다. 지금까지 포인트 결제와 카드 결제를 통해 쌓아진 기부금만 총 36억원 수준이다. 이외에도 KB국민카드는 'KB포인트리' 카드가 만들어 질 때 마다 1000원씩의 기금을 적립하고 카드 포인트를 보태 매년 기부한다.
박윤희 신한카드 브랜드전략팀 사회공헌 담당자는 "국내 최초로 기부전용인 아름다운카드와 함께 '아름인'이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기부처와 후원자들간의 커뮤니티 형성을 돕고 있는데 지난해 10월 16일 '세계 식량의 날'을 맞아 두 달간 포인트, 카드결제 후원행사로 총 2000만원이 기부금으로 들어와 여기에 매칭해 총 4000만원의 기금을 기아대책에 전달한 바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용할 수 있는 신용카드 포인트가 유효기간이 지나 소멸되는 경우도 많은데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2008년에는 1380억원, 2009년 1분기에만 184억원이 아깝게 소멸되고 말았다. 문상록 굿네이버스 홍보부장은 "개인 후원자들도 가까이에서 실천할 수 있는 기부방법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기부연계상품은 보험에도 있다. 여타 종신보험처럼 매달 보험금을 납입한 뒤 사망 시 그 수익자를 가족이 아닌 자선단체로 지정해 둔 보험인데 우리나라에 도입된 역사가 10년 정도다. ING생명과 메트라이프생명, 삼성생명, 교보생명 등에서 판매하고 있다. 30대 남성 기준 2만5900원씩을 10년간 매달 납입한다고 했을 때 약 310만원의 후원금이 모이지만 사랑의 보험금을 통한다면 1000만원을 후원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1월 국내 최초로 기부보험을 판매한 ING생명의 '사랑의 보험금'은 지난해 9월말 기준 약 2400여명의 고객들이 동참에 기부를 실천해 나가고 있다.
김연지 ING생명 사회공헌활동 담당자는 "가입한 고객들이 사후 백혈병소아암협회나 유니세프 등에 기금을 전달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치료비로 전액 지원이 되고 있는데 특히 평소 기부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부부가 함께 이런 상품에 가입하는 예도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공익형 펀드가 등장해서 눈길을 끈다. 지난 12월 23일부터 출시된 나눔펀드가 그 예다. 기존에는 '어린이 펀드'라고 해서 수익자의 자손들이 경제교육 등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상품뿐이었지만, 이제는 아예 자선단체를 지정해 보수 일부를 결식아동이나 다문화가정에 지원할 수 있게 했다.
조진구 금융투자협회 집합투자시장팀 과장은 "펀드가 이제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보편화되면서 선행을 하고파 하는 고객들에게 기부의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4개 운용사와 5개 은행 및 증권사가 나눔펀드를 공동 출시한 것"이라면서 "나눔펀드 중 하나인 KB스타한국인덱스주식형펀드(C-D)는 지난 23일부터 28일까지 4200만원 규모가 팔린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기업-자선단체 간 소통, 더 필요한 때= 박 본부장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 후원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자, 기업들이 재원전달 뿐 아니라 그동안 후원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그만큼 시너지 효과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다만 일부 기업 중에는 해외 사업 확장을 위해 개발관련 비영리단체 쪽에다 언론홍보까지 요구하는 등 간혹 무리한 주문을 해오기도 해 난감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본부장은 이어 “기부 형태가 기업-개인-단체가 합작한 다각화된 캠페인이 더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우선의 목적인 ‘기부’에 초첨을 맞춘 채 서로 더욱 많은 소통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기부관련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1회성에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에 정기기부로 이어지게 하는 후속작업이 요구되기도 한다. 송선민 한국여성재단 기획팀장은 “기업홍보위주의 틀을 벗어난 성공적인 결과와 시너지효과, 지속가능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소통의 긍정적인 사례로 최근 연말을 맞아 신한카드 사회공헌팀은 ‘아름인’ 기부처 200여 관계자들과 모임을 열어 기업과 기부처가 서로 아이템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기부처 선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박윤희 담당자는 “우선 법적인 문제가 없고, 기금이 투명하게 쓰이는 조직인지 등 신뢰도를 가장 따진다”고 답변했다.
여기에 기업의 사회공헌 모토와 부합한 결합사업들도 이뤄지고 있다. 박 담당자는 “'미래세대 육성'이라는 모토로 관련기관에 봉사와 함께 자신의 꿈과 비전을 소개하고 어필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해 홀트아동복지재단에 지원하고 있는데 수혜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갖게 됐다”면서 “앞으로도 꾸준히 이러한 사업들에 신경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연지 담당자 역시 “아동과 환경, 교육을 주제로 한 캠페인이 ING그룹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인데, 자선단체 후원에 더불어 봉사활동과 함께 학교 지원 활동도 늘어나고 있어 이에 따라 기부보험자체도 학교를 수익자로 한 가입이 이뤄지면서 올해부터는 이와 관련된 사업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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