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한국의 궁사들은 여전히 강했다. 그 면모에는 남녀 구분이 따로 없었다. 모두 만리장성을 넘고 금빛 과녁을 명중시켰다.
임동현(청주시청), 오진혁(농수산홈쇼핑), 김우진(충북체고)으로 구성된 남자 양궁대표팀은 22일 오후 중국 광저우 아오티 양궁장에서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에 221-218로 승리를 거뒀다. 1982년 인도 뉴델리대회부터 금 행진을 이어오던 대표팀은 이로써 8연속 금메달의 위업을 달성하게 됐다.
이번 대회 양궁대표팀의 낭보는 두 번째다. 지난 21일 주현정(현대모비스), 기보배(광주광역시청), 윤옥희(예천군청)로 이뤄진 여자대표팀은 중국과 단체전 결승에서 두 차례 슛오프(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78-275,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이들은 대회 4연패를 달성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녀 궁사들의 선전은 어느 때보다 고무적이다. 최근 급성장을 이룬 홈팀 중국의 기세를 모두 꺾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서 공개된 중국 궁사들의 솜씨는 대표팀과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초반 기세에서는 더 나은 모습을 보였다. 여자대표팀은 3엔드까지 165-168, 3점 뒤진 채 4엔드를 맞았다. 남자대표팀도 168-169, 한 점 적은 점수로 4엔드에 돌입했다.
역전의 제왕으로 거듭난 건 탄탄한 뒷심과 중압감 극복 덕이었다. 여자대표팀은 4엔드 두 번째 시도서 여느 때처럼 25점을 쏘아 올렸다. 반면 중국은 22점에 그치며 다 잡은 승리를 놓쳤다. 대표팀의 노련미가 빛난 건 그 뒤부터였다. 2차 슛오프서 세 선수는 모두 10점을 쏘아 올리며 기선을 제압했다. 반면 중국은 첫 주자 천밍이 10점을 쏘며 희망을 이어갔지만, 이어 사선에 선 장윤뤼가 7점에 그치며 고개를 숙였다.
남자대표팀의 경기 역시 슛오프만 없었을 뿐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1엔드를 56-56으로 마친 대표팀은 2엔드서 55점을 합작했다. 반면 중국은 2엔드 2차 시도서 세 선수가 모두 10점을 맞추며 3점차(55-58)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표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3엔드 1차 시도서 임동현과 오진혁이 모두 10점을 쏘며 추격의 불씨를 살렸다.
3엔드서 점수 차를 2점으로 좁힌 대표팀은 마지막 4엔드서 위기를 맞이했다. 임동현과 오진혁이 1차 시도서 각각 8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막내 김우진은 두 발을 모두 10점으로 마무리 지으며 형들의 부진을 보기 좋게 메웠다. 중국은 마지막 2차 시도서 충분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6점을 맞추는 등 막판 평정심을 찾지 못한 채 자멸하고 말았다.
위기 상황서 이 같은 놀라운 집중력은 어떻게 발휘되는 걸까. 중국 언론들은 22일 오전 일제히 한국 여자 궁사들의 놀라운 집중력을 조명하고 나섰다.
중국 차이나데일리는 “한국 여자 선수들이 살아있는 뱀을 목에 두르고 담력훈련을 했다”며 “그 결과 세 선수가 막판 10점을 맞히는 등 역전승을 일궈냈다”고 보도했다. 다른 신문들도 “격렬한 경기에서 침착할 수 있던 비결은 뱀”, “더 강한 담력훈련 소화가 아시아 최고를 지켜낸 비결”등 다양한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선수들을 극찬했다. 이에 조은신 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말처럼 우리는 담력을 기르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훈련을 한다”며 “그래서 충분히 금메달을 딸 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야구장, 공원 등에서 따로 훈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홈팀인 중국 관중들의 경기장 내 소음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이 같은 방법은 영국, 중국, 대만 등의 나라에서도 훈련에 그대로 적용시키고 있다. 대표팀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이번 대회 직전 제주도 서귀포에서 바람 적응에 나섰고 최전방 부대를 찾아 탱크를 타고 철책근무를 서며 담력 증강을 꾀했다.
물론 중국도 이에 못지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차이나데일리는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동물원을 찾아 호랑이 엉덩이를 만지고 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꽤 강한 담력을 키우는데 성공했지만, 이는 뱀을 두르는 과감함에 미치지는 못했다”고 보도했다. 남녀 대표팀의 금메달 모두 강한 담력과 피나는 노력으로 빚어진 결과물인 셈. 이는 만리장성의 높은 벽도, 대회 연패를 달성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장애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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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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