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정부·금융 '입체작전' 글로벌 수주 파고 넘어
UAE 원전 계약 프랑스·일본 업체 압도 값진 승리
[아시아경제 소민호 기자] 아랍에미리트(UAE) 원전을 둘러싼 숨막히는 수주전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진행되면서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작년 하반기 예정됐던 낙찰자 발표가 차일피일 지연되다 연말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를 맞을 무렵 터져나와 더욱 분위기가 고조됐다. 초대형 프로젝트 수주 소식은 차가워진 날씨마저 훈훈한 느낌으로 바꿔놓았다.
한국컨소시엄의 대표로 나선 한국전력의 기쁜 표정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소식을 기다리던 한전 내 한국수력원자력, 두산중공업, 현대건설, 삼성건설, AMEC, 벡텔 등 10개사 약 80명의 UAE 입찰전담반 '워룸(War-Room)'에서는 환호성이 울려퍼졌다. 컨소시엄에 참여하지 않은 건설사에서도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부도 이 분위기에 가세했다. 지식경제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공식 논평을 내고 첫 해외 원전수주의 의미를 설명하기 바빴다.
원전 수주를 최종 진두지휘한 이명박 대통령은 계약체결 현장은 물론 2009년을 정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서도 원전수주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012년까지 우리 원자력 발전의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하고 "그동안 우리가 기술면에서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미국과 프랑스, 러시아와 일본이 점유하다시피 한 원천기술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진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앞으로 산업계와 정부, 연구기관이 협력해 귀한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통령이 나서 '신선단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해외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민간업체의 해외진출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이 입체적 합동작전이 중요하며 초대형 프로젝트를 선점할 수 있음을 지적한 셈이다.
UAE 원전 수주는 지난 30여간의 기술전수 작업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수출길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 이번 수주를 계기로 우리 기술력의 우수성은 국제적으로 입증을 받았다. 시공과 운영 모두 UAE에서 경쟁한 프랑스와 일본컨소시엄을 압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가장 큰 의미는 한국 건설업과 제조업의 경제지평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며 앞으로 무한한 확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게 됐다는 데 있다.
어떤 기술이든 실적이 전제되지 않으면 국제입찰에서 기회를 잡기란 너무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전은 물론 건설업계와 정부 등이 모두 한목소리로 원전 수주에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 지금까지 수차례 도전을 해왔지만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도 해외 시공실적이 없다는 것이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다"면서 "수주실적을 확보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가 있으며 기뻐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사실 그동안 다른 프로젝트에서도 이 같은 '신선단 전략'은 간헐적으로 활용돼 왔다. 신도시 수출사업이 대표적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08년말 아제르바이잔에서 따낸 분당신도시의 3.6배인 7200만㎡ 규모의 신행정도시 건설사업총괄관리(PM) 계약이나 부이난 등 알제리 신도시사업도 비슷했다. 그럼에도 이번 원전수주가 남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무엇일까.
이전 정권의 건설부처 수장을 지낸 추병직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UAE 원전 수주는 한국형 원전이 수출되는 감개무량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전 신도시 수출과는 다른 차원의 개가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장관 재직시절 신도시 수출을 위해 대통령이 방문하거나 총리, 장관 등이 아제르바이잔, 몽골, 알제리 등을 방문했고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면서도 "신도시는 전혀 새로운 아이템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원전 수출은 대한민국으로서는 처음 수출에 나선 것이었고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민간과 공공기관의 앞선 기술력을 토대로 국방과 외교 등이 총체적으로 나섰다는 점이 특징이라는 설명이다.
더욱이 터키,요르단, 핀란드, 우크라이나 등 세계 곳곳에서 추진중인 1조달러 이상의 원전건설시장을 생각하면 의미가 남다르다.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맞아 세계적 이목이 집중된 프로젝트에서 우리 기술력이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확보한 때문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연구위원은 "한 번 메머드 프로젝트를 성공하면 후속 프로젝트를 따낼 가능성이 높아진다"면서 "원전에 이어 고속철도 등 다른 대형 프로젝트에서도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정부 등이 입체적으로 수주전을 펼칠 경우 산업발전은 물론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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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호 기자 sm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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