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속담에 "전쟁에 나갈 때는 한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 두 번 기도하라"라는 말이 있다. 최근엔 여기에 한 문장을 덧붙여 "결혼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혼하는 남자와 여자를 '목숨을 담보로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 또는 '험한 바다에 맞서 싸우는 선원'에 빗댄 것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다소 다른 뜻이지만, 러시아에서 여자가 결혼 후 남편의 성(姓)을 따라 쓰는 것도 '죽음'의 의미다. 결혼 전까지의 삶은 끝나고, 새 삶이 시작됐다는 의미로 생긴 제도이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러시아에는 결혼과 관련된 다양한 풍습이 전해진다. 황제 시절에는 남자들이 마치 물건을 사듯 마음에 드는 여자들을 골라 돈을 지불하고 사오기도 했다. 중매 형식을 빌려 부모님 합의 하에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식을 치루긴 했지만, 지금으로썬 '범죄'에 가까운 행위다. 젊은 여자들은 '점(占)'에 많이 의존해 결혼할 남자를 선택했다. 또래 여자들보다 결혼이 늦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시집 못간 여자들은 최소한 남들 앞에서 자신의 나이를 셀 때라도 창피한 시늉을 해야만 했다. 어느 지방에서는 신부가 결혼식 때 긴 베일을 머리에 쓰기도 한다. 얼굴을 가리지 않은 여자는 남편에게 해를 끼쳐 남편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미신 때문이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련) 시절엔 결혼식을 올리기 전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 관례였다. 최소 3개월 전에 미리 호적등록과에 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고, 그 후 상호 동의하에 사인을 하는 형식이다. 사인은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라, 가족· 친척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행해져야 한다. 서류 절차가 끝난 후에야 호적등록과 건물 안에 마련된 결혼식장으로 이동, 결혼식을 치를 수 있다. 결혼반지는 오른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준다. 결혼 증표로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는 한국과는 다른 것. 이런 문화를 모른 채 러시아에서 왼손에 결혼반지를 끼고 돌아다니면 이혼한 사람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최근 들어 다소 짧아지긴 했지만, 러시아의 전통 혼례는 장장 3일에 걸쳐 진행된다. 첫째 날 신랑은 처가에서 신부를 데리고 온 뒤 성당· 교회 등에서 결혼식을 치른다. 첫날밤은 신랑 집에서 보낸다. 그 후 둘째 날은 신부 집에서, 셋째 날은 다시 신랑 집에서 보내는 것으로 결혼식 행사는 마무리된다.
얼마 전 러시아 친구의 결혼식에 초대 받은 적 있다. 한국의 예식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놀랐다. 퀴즈 콘테스트도 열고 결혼 축하 메시지가 담긴 시낭송과 축가도 불러주는 식이다. 사회를 보던 러시아 남자는 신부 구두에 보드카를 가득 담아 마시게 해 분위기를 띄웠다. 결혼식이 끝난 뒤 신랑· 신부는 친구들과 함께 공원 같은 장소로 이동해 기념촬영을 한다.
이밖에 결혼식장 입구에 축의금을 걷는 한국과는 달리, 러시아에선 식이 끝난 뒤 진행되는 콘테스트 중에 결혼 케이크 첫 조각을 경매에 붙여 파는 방식 등으로 자연스럽게 신부 측에 돈을 건넨다. 엄숙한 분위기의 결혼식에 익숙한 나에게 깜짝 이벤트같은 느낌의 러시아의 결혼식 풍경은 색다른 경험이자, 문화적 충격이었다.
글= 김현철
정리= 윤종성 기자 jsyoon@asiae.co.kr
◇ 김현철 씨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시베리아 교통대학교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현재 노보시비르스크 한인 유학생 대표직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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