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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두 개의 칼날

시계아이콘01분 41초 소요

정치인은 권력과 돈이라는 두 개의 날을 가진 칼을 주머니에 넣고 수시로 제 칼에 자기 손을 다치며 살아가는 숙명의 군상들입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권력의 주변에는 그 권력의 날을 써달라고, 봉투를 들고 유혹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법입니다. 거기서 살아남은 정치인은 명예로운 은퇴를 선택한 사람입니다.


어느 대법관이 그 유혹을 피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는 일화는, 매일 한 시간 남짓한 그 점심시간의 유혹에서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람 자체를 만나지 않는 소극적인 방법뿐이란 걸 천하에 고백한 셈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대한민국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한발만 삐끗하면 바로 교도소 마당 안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여간 조심해서 걷지 않고는 교도소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는 뜻이지요.


“한강에 국회의원과 돼지가 동시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면 누구를 먼저 구해야 하는가?”라는 난센스 퀴즈가 나돈 적이 있었는데, 그 답은 국회의원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정치인부터 먼저 건져내야 한강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비록 패러디일지언정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돼지보다 더러운 존재로 비하되고 있었던 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위 퀴즈의 답은 이중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더럽지만 어떤 국가도 정치인들이 해야 할 역할은 분명 있기 때문에 그들을 결코 한 마리 돼지처럼 죽도록 그냥 버려둘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인정한 것입니다.


지하철 가판대에서 ‘벌거벗은 노무현과 살 떨리는 승부수’라는 선정적인 주간지의 제목을 보며 문득 2003년 초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던 ‘놈현스럽다’와 ‘검사스럽다’란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른바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TV로 지켜본 노무현의 지지자들이 만든 유행어였습니다. 전자는 당당함과 정의의 상징이었고 후자는 야비하고 권력에 물든 속물들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6년여 만에 두 표현은 간데없고 노씨가 자신을 변호하는 창구로 개설한 ‘사람 사는 세상’이란 홈페이지를 보며, 왜 그가 하필이면 제목을 그렇게 택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작가 황석영이 북한 땅을 처음 방문하고 썼던 책의 제목도 <그곳에 사람이 있었네>였습니다.


‘사람’이라는 지극히 친숙하고 평범한 단어가 정작 누군가에 의해 말해질 때는 참으로 준엄한 얼굴의 단어로 돌변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처럼 산다’는 것과 ‘인간답게 산다’는 말의 의미를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만 실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입니다.


동생으로부터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지칭되었던 형 노건평씨가 한겨울에 교도소로 간 이후 줄줄이 그 뒤를 따르는 노무현의 사람들에게서 한국정치의 전형을 보는 듯합니다. 썩어가던 정치판에 한줄기 신선한 바람인줄 알았던 ‘노풍’은 다시 더 큰 상처만 남기고 있습니다. “역시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는 통설을 노무현에게서 확인하게 된다면 정말 정치인의 위상은 회복불능입니다.


대형 교통사고로 산 자와 죽은 자들이 뒤섞인 참담한 현장에 구급대가 막 도착했답니다. 서로 먼저 살려달라고 손짓하는 중상자들 속에서 낯익은 한 국회의원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급대원은 그를 외면한 채 주위의 다른 사람들만 들것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보다 못해 왜 저 사람은 모른 척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도착할 때부터 말은 저렇게 살려달라고 하는데 도대체 정치인들 말은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런 식으로 ‘사람 사는 세상’과 ‘사람 잡는 세상’이 양날의 칼처럼 가까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가끔 정치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요.






시사 평론가 김대우(pdik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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