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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선생님의 힘’

시계아이콘02분 36초 소요

고려대의 수시모집 전형과정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례들이 적잖다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1단계 전형결과 일반고 상위등급 수험생은 떨어지고 특목고 수험생은 등급이 낮은데도 합격했다는 것입니다. 특목고 출신 학생을 우대하는 고교등급제가 적용됐다는 주장인데 정작 대학은 구체적인 전형 기준을 아직 밝히지 않고 있어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처럼 대학입시에 예민한 사회도 드문 편입니다. 한때는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이 대학 정원의 2~3배에 달해 그야말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정원이 남아도는데도 경쟁은 더욱 치열합니다. 소위 명문대학의 입학여부를 성공의 지름길로 여기는 풍조가 갈수록 심화되기 때문입니다. 또 대학들은 우수한 학생을 뽑아 학교의 명성을 유지해야 학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학교 명예를 지킬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입니다.

학생들의 무한경쟁 속에 공교육이 무너지고 소위 ‘과외망국병’이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면서 ‘3불 정책’이 도입되었습니다. 본고사와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시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한동안 잘 지켜졌습니다. 그러나 대학들의 학생 선발 변별력이 떨어지고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하향 평준화됐다는 지적과 함께 곳곳에서 ‘3불 정책’을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번 고려대의 수시전형 논란도 결국은 ‘3불 정책’을 깨려는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3불 정책’을 철회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아직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선 기여입학제는 국민 계층간 위화감 조성 등 부정적 요인이 많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고 본고사와 고교등급제는 다시 과외 열기를 부추겨 공교육을 약화시키고 사교육에 대한 부담감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진단입니다. 요즈음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로 중학생들의 학습 스트레스가 고교생보다 더 심하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마당에 일부 사립대의 본고사 부활 시도 등은 더 큰 혼란을 부를 수 있습니다.

대학들이 우수한 인재를 뽑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혼란을 야기할 본고사를 부활하려하고 특목고 학생들이 우수할 것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에 이끌려 고교등급제를 편법으로 동원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일부 대학들이 입시 제도를 흔들면서까지 학생 선발에 집착하는 것은 대학 이기주의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우수한 학생을 뽑아 손쉽게 교육하려는 발상입니다. 전국 고교생을 대상으로 1등부터 세워놓고 대학의 입맛대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것은 학생들의 개성과 개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평가에 불과합니다.


도시 학생-지방 학생, 특목고생-일반고생-실업계생 등 여러 부류의 학생들이 차별 없는 전형을 통해 선발돼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는 풍토가 이어져야 합니다. 교육의 수월성은 교단으로부터 나오고 이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노력으로 가능해집니다. 조금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도 학교와 선생님이 어떻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집니다. 얼마 전 한 지방대학 공대에서 3년 새 30명의 학생이 미국 유수 대학원에 합격하는 쾌거가 있어 우리를 놀라게 했습니다.


“지방대는 단순히 지방에 있는 대학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차별과 기회의 박탈과 인맥의 단절이 숨어 있다. 지방대를 나와서는 변변한 곳에 취직자리 알아보기도 쉽지 않은 게 그들의 현실이다.”


조명석 교수가 지은 <강릉대 아이들 미국 명문대학원을 점령하다>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조 교수는 국내 대학원 진학도 쉽지 않은 입장에서 미국 유명대학원을 진학함으로써 국내에서의 학벌에 대한 차별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수능 성적이 모자라 수도권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하고 자기 패배감에 젖어 있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학습을 도와주며 함께 생활했으나 그들이 좌절을 겪을 땐 많은 비난도 감수해야 했답니다. 그러나 미국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내외 굴지 기업에 취업이 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미국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강릉대에 진학하는 학생도 생겼답니다. 교단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자신이 세운 자선단체 재단 파트너들에게 보낸 연례편지에서 ‘선생님 개혁론’을 강조합니다. 그는 “내가 시애틀의 사립학교에 다녔을 때 선생님들은 나의 흥미를 북돋웠고 독서와 학습을 장려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수학과 소프트웨어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훌륭한 선생님과 무능한 선생님이 내는 교육적 차이는 놀랄 정도로 크다”고 말합니다. 게이츠가 재단의 고교교육 개선사업과 관련해 강조한 글이지만 이는 대학 교단의 선생님에게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 합니다.


며칠 전 한 조간신문에 ‘선생님 한 명이 학교를 바꿨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 만들기 실험을 하는 김영숙 덕성여중 교장의 이야기로 전교 1등을 하는 학생의 학부모에게 “아이를 맡겨달라”고 설득해 학원을 끊게 하고 전 교사와 함께 새로운 교육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미 여고교사 시절 지원율이 55%에 지나지 않던 학교를 모두가 지원하고 싶은 학교로 개조한 전례가 있습니다.


우수학생은 수준별 수업을, 부진학생들은 보충지도 하고 여러 형태의 학습팀을 운영해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켜 올해는 지원율이 130%를 넘었답니다. 이 또한 선생님의 노력이 교단에서 얼마나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일부 대학들이 ‘학생 성적순 세우기’ ‘고교 서열화’ 등 손쉬운 방법을 꾀하려는 세태에서 묵묵히 제자들을 지도하시는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우수한 학생을 확보하려는 경쟁보다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해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영재로 기르는 경쟁이 더욱 요긴한 때입니다. 공자도 우수한 인재를 기르는 일이 ‘인생3락’ 중의 하나라고 일찍이 강조했습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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