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기 전에 쟁이라니까'…공짜 식권으로 하루 세 끼 때우는 노인들

'무료급식' 먹으러 탑골공원 줄 서는 노인들
빈곤율 완화 통계는 착시…베이비부머 합류
"노인 한 그룹 묶지 말고 세밀한 정책 필요"

"떨어지기 전에 얼른 점심 표부터 쟁이라니까!"

지난 20일 오전 7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동문 앞 골목. 백발의 서모씨(75)가 '29번' 종이 번호표와 '91번' 붉은 스티커를 들어 보이며 옆 사람의 등을 떠밀었다. 무료 식권 두 장이었다. 서씨의 뒤로 아침밥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행렬이 북문을 지나 서문 담벼락까지 길게 이어졌다.

20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삼일문 앞에서 점심 무료 도시락을 수령하기 위해 노인들이 줄을 서고 있다. 이지예 기자

탑골공원 노인들의 하루는 '세 끼 지도'를 따라 흐른다. 새벽에 점심 식권 두 장을 확보하면 원각사 무료급식소에 줄을 서 아침을 해결한다. 점심이 되면 식권 두 장을 나물밥과 도시락으로 교환하고 도시락을 '저녁 몫'으로 아껴둔다. 무료급식을 세 끼로 쪼개 배를 채우는 셈이다.

아침에 이어 점심에도 줄을 선 박장희씨(69)는 설 명절 때도 이곳에 있었다. 약 20년 전 이혼했다는 그는 연금만으로 살림을 감당하기 어려워 무료급식을 찾기 시작했다고 했다. 서씨나 박씨처럼 '세 끼 지도'를 따라 하루를 보내는 70~80대 노인은 수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끼니를 해결한 노인들은 식어가는 도시락을 챙겨 하나둘 안국역 노인복지센터로 향했다. 탑골공원이 이들의 사랑방이었지만 장기판 사용이 금지된 뒤 옮겨 간 새로운 안식처다. 박씨는 센터로 향하는 골목 곳곳을 가리키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밥집'의 메뉴판을 줄줄 외웠다. 그는 "여긴 콩나물국 3000원, 저기 천사무료급식소에 가면 설렁탕을 준다"며 "가끔 교회에서도 나눠 주지"라고 했다.

20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위치한 조계종 원각사 무료급식소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이 식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지예 기자

노인빈곤율이 완화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상당수 노인의 빈곤한 삶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활동을 활발히 해온 베이비붐 세대의 '노인' 진입에 따른 통계 착시라는 분석이다. 저소득 노인을 겨냥한 세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국가데이터처가 최근 공개한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노인빈곤율(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은 처분가능소득 기준 35.9%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2023년 38.2%와 비교하면 2.3%포인트 낮아진 수치로, 하락세 전환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20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위치한 조계종 원각사 무료급식소에서 노인들이 저녁으로 챙겨둔 도시락을 발 아래 내려둔 채 무료 급식을 먹고 있다. 이지예 기자

이번 조사에 쓰인 '처분가능소득'이란 국가로부터 받는 연금이나 각종 보조금을 합친 뒤 세금 등을 뺀 금액이다.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를 시장소득 기준으로 전환하면 노인빈곤율은 54.9%로 높아진다. 시장소득이란 국가의 도움 없이 벌어들인 소득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먹고살 만한' 2차 베이비붐 세대(1964~1974년생)가 고령층에 편입되며 통계 왜곡을 일으켰다는 분석도 있다. 국가통계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사회동향 자료를 보면 2023년 전기노인(65~74세) 가구주 가구의 시장소득 기준 빈곤율은 40.5%, 후기노인(75세 이상)의 경우 73.8%에 달했다. 빈곤 완화 효과도 전기노인은 44.1%인 반면, 후기노인은 22.4%에 그쳤다.

노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고령층을 '하나의 집단'으로 묶는 설계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후가 준비된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접어들면서 노인들 간 격차가 더 커졌다"며 "노인을 한 그룹으로 취급하면 그 이면의 문제가 가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초연금은 더 가난한 노인들을 중심으로 하고, 건강한 노인은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활동적 노화(Active Aging)'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부 이지예 기자 easy@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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