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제훈기자
민주화 운동의 거목(巨木)이었던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민주평통은 이날 "이 수석부의장이 베트남 현지시간 오후 2시 48분 운명하셨다"고 밝혔다. 고(故) 이 수석부의장은 베트남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태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베트남 호찌민을 방문한 도중 급격히 건강이 악화해 별세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호찌민 탐안(Tam Ahn) 병원에서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스텐트 시술과 함께 중환자실서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민주평통 관계자는 "현재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며, 확정되는 대로 다시 알려드리겠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고, 유가족분들께 따뜻한 위로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화 운동의 거목 중 하나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에 투신한 뒤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고,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내는 데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이 수석부의장은 정계에 투신했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낙선한 후 평화민주당에 입당했고,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 지역구에 출마해 김종인 민주정의당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했다. 해당 지역구에서 이 수석부의장은 내리 5선을 했다.
그는 정계 투신 이후 1995년 민선 1기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직을 수행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해당 시기 고교생들을 지칭하는 '이해찬 세대'라는 용어가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이 수석부의장은 2002년 16대 대선에선 새천년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기획본부장을 맡아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도왔다. 2004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고인은 김종필 전 총리 등과 함께 '실세 총리'로 불리는 등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로는 민주 진영의 원로 역할을 맡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됐다 탈당·당선 후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한 고인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수석부의장 체제의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는 등 대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정계를 은퇴한 이 수석부의장은 2024년 22대 총선에서는 이재명 당시 당 대표, 김부겸 전 총리와 함께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총선 승리에 기여했다.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10월에는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