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민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12·3 비상계엄 사태로 치러진 조기 대선의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내란 심판'과 '민주주의 회복'이라는 기치를 든 이 대통령의 정치적 명분에 공감한 유권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맞은 보수 진영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친윤(친윤석열)계와 비윤계, 찬탄(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탄(탄핵 반대)으로 나뉘어 내홍을 겪었고, 후보 단일화 파동으로 국민적 실망감을 준 것도 이 대통령의 독주 체제를 강화했다.
이 대통령을 당선으로 이끈 결정적인 순간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꼽힌다.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회 본회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정당 대표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지만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이끈 이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이다. 이 때문에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국면에서 성남시장이던 이 대통령이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뿌린 탈권위주의·민주주의 투사의 씨앗이 비상계엄 해제로 만개했다는 평가도 당시 나왔다.
이 대통령은 20대 대선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석패한 후에도 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3년간 윤석열 정부의 실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당시 발목잡기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이 대통령은 비상계엄 이후 '내란극복' '민주주의 회복' '진짜 대한민국'을 슬로건을 적극 활용하며 '정권 심판론'을 식지 않게 했고, 민주당 경선부터 대선까지 낙승을 만들어냈다.
두 번째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의힘에 대한 심판론이 부는 와중에도 자중지란에 빠지며 빅텐트가 무산된 것도 이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비상계엄 국면 직후 국민의힘은 계엄 해제를 이끌고 윤 전 대통령 탄핵·출당을 요구한 한동훈 전 대표를 사퇴하게 만들며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이 주장하는 '내란 옹호 세력'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버렸다. 이후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반탄이 우세한 가운데 찬탄과 다투는 극심한 당내 갈등 상황을 지속적으로 노출했다.
후보 단일화 파동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문수 대선 후보가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단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으나 김 후보와 한 전 총리가 단일화 룰을 두고 충돌한 끝에 무산됐다. 이에 국민의힘 지도부가 강제로 한 전 총리로 후보를 교체하려다 실패하며 일부 보수층과 중도층의 실망을 줬다. 특히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가족논란·사법리스크 등 '반이재명'을 선거전략으로 내세웠으나 계엄과 당내 갈등 상황에 대한 처절한 반성을 보이지 못하면서 이준석 개혁신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했고, 결국 이 대통령 당선에 영향을 끼쳤다.
대선 국면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1일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으로 위기를 맞았으나 역설적이게도 사법부의 대선 개입, 윤석열 정부의 야당 탄압으로 비쳐 진보층을 결집하게 했다. 특히 파기환송 후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7부가 이 대통령에 대한 심리를 대선 이후인 이달 18일로 미루면서 사법리스크가 일부 해소되며 선거 운동에 탄력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