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정 세대에서 승진과 리더 역할을 기피하는 ‘리더포비아(leaderphoiba)’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 후보자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직장 내에서 팀장이나 관리자 역할을 꺼리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도 입주자 대표직 선출이 어려지고 있으며, 사회단체나 비영리 조직에서도 리더 역할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국 사회에 리더포비아가 확산한 배경에는 책임과 희생의 증가, 개인주의 성향의 강화, 그리고 보상 대비 부담의 불균형이 있다. 조직이 투명해지면서 리더의 권한은 줄어들었지만, 책임과 희생 등 리더 역할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크다. 또한 한국 사회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주의가 강화하면서 조직에 대한 헌신보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리더 역할을 회피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많은 사람이 리더의 책임과 희생과 비교해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끼며, 이러한 인식이 리더포비아를 심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리더포비아는 ‘MZ 세대’라고 하는 특정 세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세대’의 관점에서 본다면 MZ 세대가 경험한 역사적,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리더 역할을 수용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일찍이 독일의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사회적 세대를 '역사적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정의한 바 있다. 비슷한 시기에 출생한 사람들은 역사적, 문화적 경험을 동일한 생애주기에서 겪기 때문에 의식이나 행위양식 면에서 공통점을 갖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연령상으로 리더의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정보화 세대(1972~1987년 사이 출생)’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수평적인 조직 문화에 좀 더 익숙한 세대다. 이들이 조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컴퓨터, 인터넷 등 디지털 네트워크 환경 등이 구비되면서 조직 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의사결정이 상층부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하층부로 분산되기 시작했으며, 조직구조도 조직 내외부의 다양한 팀, 부서, 파트너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이러한 변화가 결국 이전 세대의 수직적인 리더십에서 수평적인 리더십으로의 이동을 가져왔다.
결국 각 세대가 경험한 역사적, 구조적 환경 변화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 및 의식 차이가 리더십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산업화 세대 (1935~1954)’와 ‘민주화 세대(1955~1968)’는 가난과 궁핍이라는 절박함 속에서 치열한 경쟁에 익숙한 세대다. 물론 정보화세대도 치열한 경쟁을 경험했지만, 수평적인 조직문화에 익숙한 세대다. 반면, 1980년대 이후에 출생한 MZ 세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해 그 규모도 작고,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사회에서 높은 생활 수준을 경험한 세대다. 이전 세대에 비해 절실함과 절박함이 없으며,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나 계층 이동에 대한 의지도 약하다.
일본의 경우도 1980년대에 우리와 유사한 사회 현상을 경험했다. 일본 사회도 소득이 올라가고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반드시 무엇인가를 이루어내겠다는 목적이나 목표 의식이 희박해진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일본의 야구 만화가 바로 '거인의 별 (巨人の星)'과 '터치(タッチ)'다. ‘거인의 별’은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스토리를 담은 만화로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반면 ‘터치’는 1980년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여유 있고 느긋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의 일본 야구 만화가 열혈, 근성으로 가득 찬 주인공이었다면, 터치의 주인공은 경기에서 팀이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이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지금 한국의 MZ세대는 여유롭고, 느긋하며, 조직보다 개인의 감정과 삶을 더 중시하는 일본만화 터치의 주인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가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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