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영인턴기자
"세커티 디벨롭한거 매리지체크해서 리셀해주시고 이슈 메컵했을 때 락앤 주세요"
최근 스타트업이나 IT 기업이 몰려 있는 경기도 판교를 방문했다가 쏟아지는 낯선 용어에 당혹스러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타트업과 IT 기업 종사자들은 회사에서 주로 은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판교 사투리’라고 불린다.
지난달 26일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같은 '판교 사투리' 때문에 괴롭다는 한 직장인의 하소연이 올라왔다. 얼마 전 판교에서 근무하게 됐다는 글쓴이 A씨는 "판교 사투리 다 부숴버리고 싶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문자 메시지가 담긴 한 장의 사진을 첨부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A씨와 직장 동료가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담겼다. 직장 동료는 A씨에게 "대리님, 오전 미팅했을 때 세커티를 디벨롭한거 매리지체크해서 리셀해주시고 이슈 메컵했을 때 락앤 주세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이에 A씨가 "죄송한데 제가 이런 판교어에 익숙하지 않아서 혹시 정확히 어떤 게 필요하신 걸까요"라고 묻자, "그냥 내일 전화 드릴게요. 대리님을 위해 조언해 드리자면 판교 사투리 잘 배워놓으세요. 이 바닥 우습게 보면 대화도 못 하거든요"라는 답장이 돌아왔다.
A씨는 "판교 다니는 형들 이런 말투 진짜 많이 써?"라며 "내가 어디 가서 학벌도 모자람 없고 머리도 아쉽다는 말 들어본 적 없는데 이거 진짜 무슨 말이야? 해석 가능한 사람?"이라고 황당해했다.
해당 문자에서 ▲세커티는 Security(보안) ▲디벨롭 : Develop(업무 성장) ▲메리지 체크 : Marriage check(결합 검토) ▲리셀 : Re-sell(문자에서는 다시 검토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듯함) ▲메컵 : Make up(문제 해결 및 보완) ▲락앤은 Lock and(확정하고 공유)의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해당 문자는 "대리님, 오전에 미팅했을 때 개발했던 보안 관련 사항(세커티)을 업그레이드(디벨롭)한 거 다시 한번 검토(메리지 체크)해주시고, 검토 후에(리셀) 이슈가 발생했을 때 해결 방법(메컵)을 마련해주시면 공유(락앤)해 주세요"로 해석된다.
해당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저렇게 말하는 게 더 어렵겠다" "진짜 너무 꼴값이다" "미국에서 회사 다니고 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음"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영어를 써" "너무 없어 보임" "처음 판교 근무했을 때 외계어인 줄" "저렇게 쓰는 사람 실제로 흔하다" "판교 취직하고 싶으면 판교어부터 배워야" 등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대표적인 판교어에는 ‘린(Lean)하게 하자’는 말이 있다. ‘린’은 1960년대 도요타가 미국 포드의 생산시스템에서 핵심만을 골라 도입한 최적화된 생산시스템을 의미했다. 하지만 판교에서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일단 빠르게 실행해보자'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또 조직 내 뛰어난 사람을 두고 일반 회사에서는 ‘에이스’라고 표현하지만 판교어로는 “그 사람 펀딩감”이라고 표현한다. 이 외에도 한 사람이 마케팅·인사·회계 등을 두루 맡는 경우를 칭하는 ‘올라운더(all rounder) 등이 대표적 판교어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