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AI 규제 가이드라인, 생태계 다지는 초석 돼야

“서비스를 준비하면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명확한 규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만난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이다. 온·오프라인에 공개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에 학습시켜 3D 정보로 제공하는 이 스타트업은 데이터 학습과 관련한 명확한 규제를 찾을 수 없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는 AI 산업은 언제 어떤 규제가 생겨 서비스가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다.

그래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AI 시대 안전한 개인정보 활용 정책 방향’이 관심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AI 관련 법규를 내놓는 것은 아니다. 세세한 ‘규정’ 대신 ‘원칙’을 중심으로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끌어 나갈 AI 정책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기업이 현재 느끼는 불확실성을 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에 밝힌 정책 방향에서 개인정보위는 포지티브 규제(사전규제)보다는 상대적으로 규제 강도가 약한 네거티브 규제(사후규제)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설정한 것이 주목된다. 포지티브 규제는 허용되는 것을 나열하고 이외의 것들은 모두 허용하지 않는 방식이다. 반면 네거티브 규제는 금지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한국은 포지티브 시스템으로 사회가 돌아간다.

지난해 전 세계 AI 열풍을 일으킨 오픈AI의 챗GPT 역시 네거티브 규제 기조 아래 성장할 수 있었다. 미국 규제당국은 AI가 편향성을 지녀서는 안 된다거나, 개인정보를 이용한 차별을 금지하는 등 명백히 지켜야 할 점을 명시했다. 이것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는 전제하에 오픈AI는 대규모 데이터를 AI에 빠르게 학습시킬 수 있었고, 챗GPT를 탄생시켰다.

국내 AI 규제가 강한 규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럽연합(EU)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유럽엔 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이 적다. 챗GPT와 같은 해외 서비스에 자국의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그래서 일부 국가에선 챗GPT가 차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네이버, 카카오가 초거대AI 모델을 개발 중이고, 수많은 스타트업이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는 AI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AI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규제보다는 우선 성장이 필요하다.

개인정보위는 AI 개발·서비스 시 개인정보 관련 신속한 법령 해석을 지원하는 ‘AI 프라이버시 전담팀’을 신설한다. 또 기업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리스크 최소화를 위해 ‘사전 적정성 검토제’도 도입한다. 규제 샌드박스 적용도 검토할 계획이다. 모두 기업 성장 지원에 방점을 두고 있다. 개인정보위의 이번 발표가 국내 AI 생태계 성장의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산업IT부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