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기자
"많이들 사무실로 나오는 느낌이에요. 회사 건물이 붐비거든요."
국내 대표 IT업체 카카오가 지난달 2일부터 '오피스퍼스트' 근무제를 시행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기본 근무 제도로 도입했던 카카오가 3년 만에 도입한 대변화다. 그동안 재택근무를 기본으로 하되 필요시 사무실로 출근했다면, 이제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이 우선인 방식이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상징이었던 재택근무가 축소된다는 소식에 이목이 쏠렸다.
시행 석 달 전 회사의 발표 이후 직장인 익명 게시판 블라인드에는 직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노동조합 '크루유니온'의 가입률이 50%를 넘어선 것을 두고도 사무실 복귀 여파라는 해석이 나왔다. 애플, 아마존,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직원들의 반발 움직임을 국내 IT 업체도 피할 수 없었다.
카카오가 오피스퍼스트 정책을 도입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일까.
현재 카카오 직원의 사무실 출근 비중은 대략 절반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로 출근하게 된 카카오 직원들은 "조직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100% 완전 재택근무부터 일주일 중 2~3일만 회사로 출근하거나, 주 5일 모두 사무실로 나오는 100% 대면 근무까지 모든 형태를 선택지에 올려두고 각 조직에서 적절한 방법을 찾아 선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회사가 제도 시행 공고를 내린 뒤 최소 2~3명 수준의 조직(셀) 단위로 근무 규칙을 정하고 이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회사 측에 '100% 재택 또는 대면', '주 2일, 3일 사무실 출근' 등 어떤 근무 형태가 가장 비중이 높냐고 묻자 "최소 조직 단위로 기간도 자율, 방식도 자율이다 보니 비중을 산정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면서 "대부분 '하이브리드(hybrid) 근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조직마다 방식이 달라 '주 X일'로 규정해 비중을 계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 달에 3일 사무실 출근, 매주 목요일 사무실 출근, 현재 특정 업무를 담당하는 크루가 협업을 위해 사무실 출근 등 조직마다 근무 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카카오는 이번에 재택근무가 아닌 사무실 출근을 기본 근무 제도로 지정한 만큼 자율좌석제에서 고정좌석제로 변경했다. 재택근무를 주로 도입한 팀의 자리는 그냥 비워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비효율적인 공간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회사는 "이번에 도입한 오피스퍼스트는 정식 근무제"라면서 "자리를 일단 모두 배정했으며 이를 없애진 않을 것"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오피스퍼스트의 취지가 사무실에서 조직 내 협업을 하게끔 하려는 것이라 크루끼리 가까이 앉아 원활하게 소통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이는 경기 침체 우려로 사무실 비용을 줄이는 데 방점을 둔 해외 IT 업체들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구글은 지난달부터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책상을 다른 직원과 공유하는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월·수요일에 사무실로 나오는 직원은 화·목요일 출근자와 한 책상을 쓰는 방식이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텅 빈 책상이 있는 걸 보면 유령 도시 같다고 지적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카카오가 오피스퍼스트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겼던 이유는 바로 직원과의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자가 카카오의 오피스퍼스트 제도와 관련해 취재하며 만난 직원들은 이것을 아쉬워했다. 회사에서는 미리 제도를 발표했고 조직마다 규칙을 정했으며 면담도 하며 준비해왔다고 하지만, 직원들이 체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재택근무를 축소하고 사무실 출근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직원 A씨는 "실무자는 어디에 있든 본인이 할 일이 있지 않나. 원격으로 일했다고 해서 딱히 뭔가를 못 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다수 의견인 것 같다"면서 "실무자와 경영진 사이에 재택근무의 효율성에 대한 견해차가 큰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직원 B씨는 "개인적으로 사무실이 시끄럽게 여겨져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조직이 자율적으로 근무 제도를 정했다고 했지만, 회사가 사무실 출근을 우선시하겠다고 방향성을 잡은 상황에서 조직장이 이를 거스르기란 쉽지 않았다는 평가도 나왔다. 직원 A씨는 "조직별로 근무 제도 관련 내용을 내라고 했는데 거기에서 튀는 답변을 하면 조직장 입장에서는 부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 B씨는 "최소 조직 단위별로 정하라고 했지만 결국 위에서 찍어누르는 곳도 있다고 한다"고 했다. 직원 C씨는 "전체적인 근무제 결정권은 결국 회사가 갖고 있지 않냐"면서 "조직별로 현재는 자유롭게 결정하라고 했지만 얼마든지 다시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카카오 노조인 크루유니온은 지난 1월 재택근무 축소로 노조 가입이 늘었다는 평가에 대해 "재택근무보다는 근무제도의 잦은 변경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잦은 의사 결정 변경이 구성원들에게 무리하게 다가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오피스퍼스트 도입 한 달을 맞은 현재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조직마다 (근무 제도 관련) 상황이 많이 다르다"면서 "주로 개별 대응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 지회장은 "출근 비율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는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거나 특정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을 파악하는 식으로 근무제와 관련해 회사와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카카오의 경쟁 업체인 네이버가 재택근무를 유지하는 상황이 심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7월부터 완전 원격근무와 주 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오피스 근무 방식 중 개인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6개월에 한 번씩 결정할 수 있는데 제도 시행 이후 지난 1월 처음으로 변경 여부를 확인했다. 소속 조직의 상황을 고려하되 최종 근무 형태 결정은 개인이 한다. 현재 네이버의 원격근무 비율은 대략 절반 정도인 것으로 전해진다.
해외에서는 인재를 확보하는 데 재택근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자인 이언 굿펠로우가 지난해 5월 애플에서 퇴사해 구글의 AI 자회사인 딥마인드로 이직한 것도 재택근무 축소가 발단이 됐다.
카카오 측은 "3개월에 한 번씩은 (근무제에 대해) 논의하자 등의 내용이 가이드라인에 있긴 하지만 조직마다 상황이 다르다"면서 "근무 제도를 고정하는 것보다는 조직별로 논의해서 최적의 답을 찾는 것이 이번 오피스퍼스트의 근간"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