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카셀대 ‘평화의 소녀상’ 기습철거…“日 압박 정황”

총학생회 “우리가 모르게 새벽에 철거”
일본 정부 측의 압박 이기지 못한 듯

독일 헤센주의 카셀 주립대가 학생들이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기습 철거했다. 일본의 압박이 철거 배경으로 추정된다.

카셀대 총학생회는 9일(현지시간)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린 게시물에서 “오늘 새벽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대학 측이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했다”며 “곧 관련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카셀대 총학생회 측에서 9일 소녀상 기습 철거 관련해 SNS에 올린 게시물 [이미지 출처=카셀대 총학생회 공식 인스타그램 캡처]

관계자들은 “이번 기습 철거의 배후에 일본 측의 지속적인 철거 압박 정황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의기억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소녀상 설치 사흘 뒤 프랑크푸르트 일본 총영사가 카셀대 총장을 만나서 ‘소녀상이 반일 감정을 조장해 카셀 지역의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철거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후 대학은 일본 총영사의 방문과 극우 및 일본 시민들의 악성 메일에 지속해서 시달려서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였다”며 “결국 일본 정부 측의 다양한 압박을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 “이번 일은 일본 정부의 오만하고 뻔뻔한 역사 부정과 왜곡의 대표적 사례”라며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압박한 일본 정부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말했다.

카셀대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카셀대 총학생회가 소녀상을 세우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은 지난해 초다.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코리아협의회에 연락해 5년마다 열리는 세계적인 국제현대미술전시회 ‘카셀 도큐멘타’에 맞춰 소녀상을 설치하고 싶다고 밝힌 것이다. 총학생회는 이를 위해 부지 사용에 대해 대학 측의 허가를 받았고 학생 의회에서 소녀상 영구존치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소녀상은 재독 시민사회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소녀상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작가에게 기증받아 영구 대여하는 형식으로 설치됐다. 소녀상이 독일의 대학 캠퍼스 내에 설치된 것은 카셀대가 첫 사례다. 당시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토비아스 슈누어 전 총학생회장은 “자국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베를린 소녀상을 철거하려고 시도한 일본 정부의 태도가 소녀상을 세우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슈누어 전 총학생회장은 9일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대학 당국이 오전 7~8시경 몰래 철거한 것으로 보이는데, 깊은 충격을 받았다. 지난 학기까지만 해도 여기서 세미나도 하고 예술 작업도 했다. 왜 철거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앞으로 학생, 시민사회와 철거에 항의하는 활동에 나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토비아스 슈누어 전 독일 카셀대 총학생회장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소녀상을 기증받아 카셀대 총학생회 측에 소녀상을 영구 대여한 코리아협의회의 한정화 대표도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총장 측과 이를 반대하는 총학생회 측이 대치하며 관련 협상이 이어지고 있었다"며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기습 철거를 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카셀대에서 대규모 규탄행사에 나설 예정이다.

카셀대는 9일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코리아협의회의 대여 전시품이 9일 전문가들에 의해 철거됐다”며 “협의회 측이 이를 회수할 때까지 주의 깊은 보호 아래 창고에 보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카셀대에서 예술품 영구 전시는 교육과 학술연구 프로젝트가 지속해서 병행하고, 설치 장소에 대한 내용상 관련성이 입증되는 경우에만 학교 교수진과 총장단의 공동 결정을 통해 이뤄진다”며 “소녀상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슈2팀 최승우 기자 loonytuna@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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