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수기자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1997년 개봉한 SF 영화 ‘제5원소’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 줄 인류의 미래에 많은 힌트를 줬다. 그 중 하나가 ‘날아 다니는’ 자동차들이다. 영화 속에서 미로와 같이 복잡한 초고층 빌딩들 사이를 자유 자재로 날아다니던 유ㆍ무인 비행 자동차들은 당시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실제 25년이 지난 현재 영화처럼 도심의 초고층화와 함께 도심형항공모빌리티(UAM) 등 유ㆍ무인 드론이 화물ㆍ승용 교통 수단으로 적극 개발되고 있다. 그런데 상용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관건은 ‘안전’이다. 지상 도로를 운전하는 자동차도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크다. 하늘을 날아 다니는 드론이 떨어지면 타고 있던 사람들이 다치거나 죽는 것은 물론이다. 추락하는 곳의 시설물 파괴ㆍ인명 피해 등 2차 피해가 더 무섭다. 이에 수백대의 드론이 특정 지역의 하늘에 집중돼 날아 다니더라도 충돌ㆍ추락없이 안전한 교통 수단이 되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우리나라도 무인 비행체 교통 관제 기술(UTM)과 드론 스스로의 안전 비행을 위한 인공지능(AI) 자율비행 기능 등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가 무심코 달리는 도로에도 규칙이 있다. 일정 속도 이상은 금지되며 도로 폭, 차량 간격 등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하물며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들도 마찬가지다. 지상 150m 안팎의 낮은 고도에 수백대가 밀집하는 게 불가피한 도심 무인비행체는 더욱 더 이같은 규제와 관제가 필수적이다. cm 단위의 정밀한 위치 파악, 경로 추적은 물론, 충돌 방지·지속적인 통신 연결 보장 등 안전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무인비행체는 유인항공기 운항이 금지되는 고도 150m 이하의 저고도에서 자동항법으로 운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저고도의 시설 밀집 지역에서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운항과 기체는 물론 지상의 안전까지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가 큰 숙제다.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것이 UTM 기술이다. 이미 드론 택배 등이 시작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같은 곳에선 벌써부터 수백개의 드론을 특정 지역에서 동시에 운영해도 문제가 없는 관제 기술이 개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ㆍ항우연)을 중심으로 2017년부터 ‘UTM 체계를 위한 보안 및 무인비행장치 핵심 기술 개발’이라는 프로젝트로 정밀 통합 항법ㆍ보안ㆍ통신 기술을 개발 중이다. 말이 쉽지,수십~수백대의 드론이 운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엄청난 양의 검증된 데이터를 처리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을 해야 해 난이도가 높은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항우연은 지난해 10월 저속ㆍ고속 드론 8대를 동시에 운행하면서 배달 임무를 수행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현재는 30~100대의 드론을 동시 관제할 수 있는 웹기반의 지상관제시스템(GCS)를 개발해 테스트 중이다. 비행 중인 드론과 1초에 한 번씩 데이터를 주고 받아 위치, 상태 정보를 웹 상에 표시하는 방식이다. 각자의 드론에 임무를 줘 이륙시키거나 정지한 채 대기(호버링)하도록 하고, 자동으로 비행해 목표인 물류창고로 가서 물건을 픽업, 배달지로 이동해 착륙시키는 작업을 원격으로 관리한다. 비행체간 위치를 정확히 포착해 간격을 유지하도록 하고, 관제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얼마나 명령에 잘 응하는지, 통신은 깨끗이 유지되는지 ,중간에 해킹되거나 비행 정보를 탈취당할 염려는 없는지 등에 대한 검증이 이뤄지고 있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등 다양한 날씨 변화를 비롯한 변수들이 많아 아직까지는 검증이 더 필요한 상태다. 배중원 항우연 무인기연구부 박사는 "무인기가 기업들의 사업에 도움이 되는 UTM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안전 운항을 지원하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며 "UTM이 사고 발생시 이해 당사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무인기의 체공시간ㆍ안전성 향상 기술과 함께 UTM 서비스의 발전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드론이 비행하는 도중 GPS가 마비되거나 통신이 끊기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런 때에 대비해 무인비행체가 스스로 건물과 사람을 피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 GPS를 보완하는 기술이 연구되고 있다. 국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은 김상현 청주대 항공학부 교수팀이 개발 중인 심층 신경망(Deep Neural Network) 기술을 이용한 3차원 시맨틱 지도 작성 및 주변 환경 인식 기술과 3차원 정밀 위치 추정 기술이다. GPS 정보를 이용할 경우 전파 방해ㆍ왜곡이 많은 도심, 특히 고층 빌딩 주변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빌딩 숲 속에서 GPS가 끊기더라도 무인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 기술 중 하나인 심층 신경망을 적용해 무인항공기가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김 교수는 "무인 비행체에 탑재된 카메라로부터 실시간으로 얻어지는 영상을 처리하기 위한 심층 신경망 기반 사물ㆍ주변 환경 인식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이를 활용한 3차원 시맨틱 공간 지도 작성, 센서 융합 기반 3차원 위치 추정 등을 통해 무인항공기가 스스로 지도 정보로 참고해 안전경로를 찾아 비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드론은 자동차와 달리 소형화, 경량화가 불가피해 한정된 하드웨어에서도 구동이 가능하고 효과가 뛰어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게 과제로 꼽히고 있다. 국내에선 비행금지 구역이 많아 드론을 마음껏 날리지 못한다는 점도 연구의 빠른 진척을 방해하는 요소다.
이미 피자 배달 등 드론 택배까지 상용화한 미국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드론에 원격 식별 장치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마련해 내년부터 전면 시행할 예정이다. 250kg 이상의 모든 드론에 원격 ID 부착을 의무화했다. 또 연방항공청(FAA), NASA가 합동으로 UTM 기술 개발 시범ㆍ실증 사업을 추진 중이다. 미국은 1단계로 UTM 파일럿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운영자간 비행계획 공유, UAS(무인항공시스템) 서비스 공급업체(USS)가 사용할 수 있는 비행정보관리시스템(FIMS) 등을 연구 개발 중이다. 2단계로 UTM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원격 ID 인식 기술(RID)을 에어버스, 아마존, 인텔, 원스카이, 스카이워드 등 UAS 서비스 공급 업체들에게 배포할 예정이다. 이를 업그레이드해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UTM 서비스 공급을 목적으로 ‘UTM 필드 테스트 프로젝트’도 추진한다.
유럽연합(EU)도 유럽항공안전청(EASA)이 2021년 1월 ‘유럽 드론 규칙’을 마련해 전체 EU 회원국과 함께 영국,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리히텐슈타인 등 비회원국까지 시행에 들어갔다. 드론의 크기와 출력, 유형, 성능, 기술요구사항, 비행 안전 요건, 드론 식별, 사전 승인 유무, 파일럿 교육 요구사항 등이 포함됐다. 현재 이 규칙에 따라 드론 비행 고도를 120m로 제한하며, 인구 밀집 지역은 운용할 수 없다. 또 모든 드론이 인증ㆍ등록을 마쳐야 하며 등록 번호를 표기해야 한다. EASA는 또 지난해 10월 민간-영공 산업 간의 협력 강화 등이 포함된 ‘드론 전략 2.0 정책’을 실천 중이다. UTM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유럽은 2017년부터 무인비행체 비행 환경 조성을 위한 청사진 ‘U-space blueprint’을 수립해 4단계의 로드맵을 밟아 나가고 있다. EU와 유로컨트롤, 기업 등이 각각 3분의1씩 출자해 총 16억유로를 2024년까지 투자해 UTM 서비스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일본은 2017년 5월 UTM 개발을 위한 민관 합동 JUTM 프로젝트를 착수해 2020~2030년 사이에 완성된 프로그램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국토교통성 주관으로 지난해까지 DRESS 프로젝트를 통해 물류ㆍ인프라 점검, 재해대응 분야에서 사용할 수 있는 드론ㆍ로봇 개발, 사회적 구현을 위한 시스템, 비행 테스트 구축 등을 추진했다. 중국도 2015년 12월 소형 드론 운행 규정을 세계 최초로 제정하는 등 정부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있다. 2016년 중국 민간항공국이 관련 법을 제정해 무인비행체 관리를 강화했다. 2017년엔 2.5kg 이상의 모든 무인 드론에 대한 실명제 등록ㆍ관리 규정을 의무화했다.
배 박사는 "해외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유무선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이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원격 식별 및 위치 보고(Remote ID)를 위해 우리나라에 잘 깔려 있는 LTE 통신망을 이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연구 중이며 가시선 비행과 비가시선 비행까지도 커버 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이라며 "이해당사자간의 역할과 권한을 법과 제도를 통해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고 영상 촬영과 비행 허가가 이원화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등의 과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