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토론회에 참석,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탈모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둘러싸고 '포퓰리즘 논쟁'이 불붙었다. 국내 약 1000만명으로 간주되는 탈모증 인구를 고려한 현실적인 공약이라는 긍정적 평가가 나온 반면, 일각에선 생명과 건강에 비필수적인 탈모 치료를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재정적 위기가 가속화할 것이란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 후보는 지난 2일 민주당 청년선거대책위원회가 '리스너 프로젝트(심층 면접 캠페인)'를 통해 취합한 건의사항 중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 안건을 들은 뒤 "이것은 소확행 공약으로 해서 빨리 빨리 발표 합시다"라고 말했다. 5일 오후에는 '청년 탈모 비상대책위원회 초청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이 후보에 대한 탈모인들의 지지선언이 줄을 이었다. 지난 4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탈모 갤러리 등에는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 검토를 환영하며 이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이 다수 올라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후보의 탈모 공약이 인기를 얻자 민주당에선 앞다퉈 탈모 갤러리를 찾았다. 김남국 의원은 지난 4일 탈모갤러리에 "저도 대학생 때부터 M자 탈모가 심하게 진행돼 프로페시아를 먹었던 경험이 있어 탈모인의 한 사람"이라며 부작용과 비싼 약값 때문에 복용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김 의원은 이어 "탈모 정책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한다. 좋은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탈모인으로서 겪는 구체적인 의견들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박주민 민주당 의원도 5일 탈모갤러리에 등장해 "많이 불러주셔서 인증하고 갑니다. 여러분, 우리도 행복해집시다"라고 말했다. 그가 함께 올린 사진에는 '가발 벗은 지 두 달 됐다'고 고백하는 영상 캡처가 담겼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탈모갤러리에 등장해 자신이 탈모임을 고백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캡처
일각에선 이 후보의 공약이 생명에 직결되지 않는 미용시술 지원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 원장을 지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강보험 재정 파탄낼 이재명의 포퓰리즘 정치'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5.3%에 그쳤다"며 "OECD 국가들의 평균 건강보험 보장률인 80%에 못 미치고 있고, 결국 우리는 주요 질병으로 인한 직접 의료비 부담이 여전히 큰 나라에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후보의 탈모 공약이 현실화되면 기타 미용 시술들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수준은 생명과 건강에 필수적인 의료 서비스를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며 "비급여인 탈모 치료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면, 미용·성형 및 피부과 영역의 수많은 시술과 치료들도 같은 반열에서 급여화가 검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탈모 공약이 지지를 얻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도 관련 공약으로 맞불을 놨다. 그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곧 고갈될 건보재정은 어디서 만들어 오겠나. 결국 건강보험료의 대폭 인상밖에 더 있겠나"라며 탈모약 카피약의 가격을 낮추고 탈모 관련 보건산업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밝혔다.
안 후보는 이어 탈모 관련 공약의 취지에 공감했다. 그는 "과거 탈모는 유전적 요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환경이나 각종 스트레스 등 비유전적 요인으로 인한 탈모도 증가하고 있다"며 "그래서 이제 탈모에 대해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편 국내 탈모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에서 탈모증으로 진료를 받은 사람은 23만3,194명으로 지난 2015년(20만8,534명)보다 12.5%가 증가했다. 대한탈모치료학회 등 관련 업계에서는 탈모 인구를 약 1,000만명으로 추산하기도 한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