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진기자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법원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인용한 결정문에서 헌법과 대법원 판례 등을 언급하며 추 장관 측 주장을 모두 배척해 눈길을 끈다.
특히 재판부가 결정 이유에서 밝힌 법리들과 사법적 판단,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에 관한 설시는 향후 징계 처분에 대한 취소소송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들로 보여 주목된다.
윤 총장이 신청한 직무정지 명령 집행정지 사건을 심리한 서울행정법원 제4행정부(부장판사 조미연)는 1일 “피신청인(추미애 장관)이 11월 24일 신청인(윤석열 총장)에 대하여 한 직무집행정지처분은 이 법원 판결 선고 후 30일까지 그 효력을 정지한다”며 일부인용 결정을 내렸다.
윤 총장 측은 집행정지 신청 사유로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토대가 된 징계사유가 현 단계에서 객관적으로 소명되지 않았다는 점 ▲직무집행정지처분으로 참고 견딜 수 없거나 견디기가 현저히 곤란한 유·무형의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고, 이를 예방할 긴급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점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져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효력이 정지돼도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윤 총장 측 주장을 모두 인정했다.
먼저 집행정지 요건 판단에 앞서 재판부는 본안 청구가 ‘이유없음’이 명백하지 않아야 하는데 추 장관의 직무집행정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윤 총장의 청구가 명백하게 이유없어 보이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행정처분의 집행정지를 구하는 신청사건에서는 행정처분 자체의 적법 여부를 판단할 것이 아니고 그 행정처분의 집행을 정지시킬 필요가 있는지 여부, 즉 행정소송법 제23조 2항이 규정한 집행정지 요건의 존부만이 판단대상이 된다”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추 장관의 징계 청구나 직무정지 명령 자체가 적법한지 혹은 정당한지는 본안 사건에서 판단할 문제이며 집행정지 사건에서는 오로지 법이 정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한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만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다.
또 재판부는 행정소송법 제23조 3항이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에는 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도록 규정한 것은,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신청인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 양자를 비교·형량해 판단하라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추 장관의 직무집행정지처분으로 윤 총장이 직무정지 기간 동안 검찰총장 및 검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것은 금전보상이 불가능 할뿐만 아니라 금전보상으로는 참고 견딜 수 없는 유무형의 손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사후에 윤 총장이 취소소송에서 승소한다 해도 그 같은 손해가 회복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직무집행정지처분이 비록 징계가 의결될 때까지의 예방적·잠정적 조치라고 해도 그 효과에 있어서는 윤 총장의 검찰총장 및 검사로서의 직무 수행 권한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i> 사실상 해임·정직 등 중징계처분과 동일한 효과를 가져온다</i>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추 장관 측은 2일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릴 예정이고, 징계처분도 곧 내려질 것이기 때문에 그 경우 직무집행정지처분의 집행정지를 구할 소의 이익이 없어지므로 굳이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효력을 정지시킬 긴급한 필요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록 징계처분이 예정돼 있다 하더라도 징계절차가 최종적으로 언제 마무리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집행정지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윤 총장의 법적 지위를 불확정적인 상태에 두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추 장관 측은 윤 총장에 대한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효력이 정지될 경우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논거를 댔다.
▲윤 총장은 수사 대상자고 징계혐의자인데 직무집행을 계속해 검찰사무를 총괄할 경우 공정한 검찰권이나 감찰권 행사가 위협받을 중대한 위험이 있다.
▲징계위원회 징계의결이 있기 전까지 검찰총장의 직무를 배제하는 것은 장관의 재량행위인데, 집행정지로 인해 윤 총장이 본안 사건인 취소소송에서 전부 승소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행한다면 검사징계법이 정한 장관의 인사권이 보장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에서 사법적 심사가 이뤄질 경우 행정청의 징계행정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심대한 타격이 가해지고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반한다.
재판부는 이 같은 추 장관 측 주장에 대한 구체적 판단에 앞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구체적 조항들을 언급하며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에 대해 설시했다.
특히 재판부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라고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를 언급했다.
재판부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등 대한민국 법체계는 검사에게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수행 업무에 관하여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고, 검사에게 부여된 막중한 권한이 공정하게 행사되도록 하기 위하여 <i>검사의 수사와 공소의 제기 및 유지 권한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 특히 검찰청이 소속된 법무부의 장관으로부터도 최대한 간섭받지 않고 행사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i>이다”라며 올해 초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참조하라고 했다.
이어 재판부는 “검사는 법무부에 소속된 행정기관의 하나이므로 행정조직원리상 최고감독자인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에 복종함이 당연하다”면서도 “(검사는) 형사사법기능의 일부를 담당하는 기관이므로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입법자는 법무부장관이 검사에 대하여 갖는 지휘·감독권은 일반적인 행정기관에 대한 지휘·감독권과 다르게 일정한 제한을 두어,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오직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며 “<i>법무부장관의 검찰, 특히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의 행사는 법질서 수호와 인권보호, 민주적 통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최소한에 그칠 필요가 있다</i>”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추 장관 측이 집행정지가 인용될 경우 공공복리에 영향을 미칠 우려의 근거라고 주장한 3가지를 모두 배척했다.
먼저 재판부는 검사징계법상 징계혐의자인 검사의 직무집행 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근거로 직무집행정지 권한이 장관의 ‘재량행위’며 집행정지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장관의 인사권이 제약된다는 추 장관 측 주장에 대해 “행정청에게 부여된 재량도 일정한 한계를 가지며, <i>재량권의 일탈·남용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며 “해당 규정이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권으로까지 전횡되지 않도록 </i>그 필요성이 더욱 엄격하게 숙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관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하며 직무를 정지시켜 남은 임기 동안 총장직을 수행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사실상 총장을 해임하는 도구로 전횡해선 안 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이 같은 결과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총장의 임기를 2년 단임으로 정한 검철청법 등 관련 법령의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 윤 총장이 계속 총장 직무를 수행할 경우 공정한 검찰권과 감찰권 행사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추 장관 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오히려 “신청인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가 이뤄질 경우 검찰사무 전체의 운영과 검찰공무원의 업무 수행에 지장과 혼란이 발생할 우려 역시 존재하고, 이 또한 중요한 공공복리”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재판부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은 징계사유의 존부에 관해 매우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사정이 그러하다면<i> 적어도 신청인에 대한 직무배제는 징계절차에서 신청인에게 방어권이 부여되는 등의 절차를 거쳐 충분히 심리된 뒤에 이뤄지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이고, 그것이 헌법 제12조가 정한 적법절차원칙에 부합된다</i>”고 지적했다.
집행정지 사건의 특성상 재판부가 추 장관의 징계 청구가 적법한지 등에 대한 직접 판단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윤 총장의 직무배제 처분에 이르는 과정에서 해명 기회도 제공하지 않고 직무정지 명령을 내리는 등 절차상 하자가 있었음을 꼬집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직무집행정지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에서 사법적 심사가 이뤄질 경우 행정청의 징계행정의 자율성·독립성을 해치고 삼권분립의 원칙에 반한다는 추 장관 측 주장에 대해 “이 사건의 본안은 징계처분이 아니라 징계 시까지 직무집행을 배제하는 처분이므로 직무집행정지처분의 집행이 정지된다고 하여 징계처분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선행돼 삼권분립에 반하는 결과가 초래된다거나 징계행정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영향이 가해질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