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역사의 현장 서울 경교장을 찾다
경교장의 김구 집무실 유리창 총탄 자국. 1949년 암살직후 찍은 사진(왼쪽)과 현재 재현해놓은 모습. 백범 김구의 죽음 하면 떠오르는 사진이다. 경교장 2층 김구의 집무실 유리창 너머, 고개를 떨군 채 통곡하는 군중의 모습. 사진 속 유리창에는 총탄 구멍 두 개가 선명하다. 안두희가 쏜 총탄이 유리창을 관통한 흔적이다. 1949년 6월 26일 김구 암살 직후 미국의 사진기자 칼 마이댄스가 찍어 ‘라이프’에 게재했던 것이다. 당시 사진 제목은 ‘혼란 속의 한국, 호랑이를 잃다’였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의 저격을 받고 서거할 당시 백범이 입었던 옷의 혈흔.
사적 제 465호 '경교장(京橋莊)'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공간이자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서거한 역사의 현장이다. 서울시는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현장을 되살려 시민교육공간으로 활용하고자 경교장을 원형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꾸몄다. 복원된 경교장에서는 대한만국 임시정부의 지나온 역사를 유물과 영상, 정보검색 코너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모스크바 3상회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1945년 12월28일)
[아시아경제 김현민 기자] 서울 강북삼성병원을 방문하면 초현대식 병원 건물과 바짝 붙어 있는 2층짜리 단아한 근대식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높이 솟은 건물들에 포위 당해 한층 더 작아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마지막 활동을 전개한 역사의 현장, '경교장(京橋莊)'이다.
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5년 환국 후 활동하던 주무대다. 정식 정부 수립을 위한 과도정부 수립 시까지 최고 의사결정기구 국무위원회를 수차례 개최하고 국내외 주요정세 변화에 대응해 활동한 실절적인 ‘정부 청사’였다. 김구를 비롯한 각료들이 거주하는 거소의 성격도 겸했다. 1938년 건립된 이 건물의 명칭은 당초 죽첨장(竹添莊)이었으나 김구의 거처로 사용되면서 근처에 있던 다리 경구교의 이름을 가져와 경교장으로 불리게 됐다. 김구는 이곳 집무실에서 대한민국 육군소위이자, 주한미군 방첩대요원인 안두희의 흉탄에 맞고 서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