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금융권 노사]<중>노동이사제, 아직은 이르다

勞 이익만 대변 주주가치 훼손노동이사제 먼저 도입한 독일효율성 낮고 경영참여도 부담[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글로벌 기업인 알리안츠그룹(금융), 바스프그룹(화학), 이온(Eonㆍ에너지). 이들의 공통점은 과거 독일 회사라는 점 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독일 국적을 포기한 것이다. 이들은 '노동이사제' 비효율성과 근로자 경영참여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독일 국적을 버리고, 지배구조가 자유로운 유럽식 유한책임회사(SE)로 전환했다.노동이사제(노동자 추천 이사제) 도입을 놓고 국내 금융권에서는 치열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개선 압박에 힘입어 노동이사제가 '근로자 추천 이사'라는 타이틀만 바뀐 채 힘을 얻고 있다.하지만 주주 자본주의조차 정착되지 않은 단계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은 근로자 이익만 담아낼수 있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노동이사제 국내 금융권 도입 임박 = 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된 노동이사제는 현 정부들어 탄력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노동이사제 도입을 제시했고, 최근 정부와 여당을 중심으로 노동이사제 추진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노동이사제는 노동자가 직접 이사회 구성원이 되는 방식이지만 현재 금융권에서 추진되는 방식은 노동조합 추천 인사가 사외이사로 들어가는 방식이다. 노조가 추천하는 외부 전문가를 사외이사에 앉히는 것이다. 근로자 추천 이사제라고도 한다. 금융권에서는 가장 먼저 KB금융 노조가 노사정위원 출신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를 추천했다. 오는 23일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국내 기업의 첫 노조 추천 이사가 탄생하는 셈이다.우선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지분율 9.62%)이 지난번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 안에 찬성 의견을 던진 만큼 이번에도 찬성표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 나온다. 권 교수를 추천한 KB금융 우리사주조합(지분율 0.47%)의 조합장도 류제강 KB노조 수석부위원장이 맡고 있다.◇은행 주인이 근로자? 정답은 주주 = KB금융 노조 등 금융권 노조는 근로자 추천 사외이사 도입 근거로 우리사주 보유를 꼽는다. 노조는 우리사주를 가진 만큼 사외이사를 추천할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같은 논리에는 허점이 있다는 게 금융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예를 들어 우리은행의 자산 260조 중에서 자기자본은 20조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240조원은 부채이다. 그 부채는 은행에 예금하고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쓰는 일반 고객이라고 볼 수 있다. 노조가 우리사주 주식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외이사 추천권을 갖고 있다면, 일반 예금자들도 은행 채권자 자격으로 세력을 갖춰서 그들이 내세운 사외이사를 추천해야 한다. 이는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결정보다는, 근로자의 복지와 이익만을 대변해 상장회사로서의 주주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더구나 우리사주를 가진 조합을 순수한 주주로만 봐야 할 것이냐라는 문제도 제기된다. 우리사주는 애초에 근로자들에게 주식을 싸게 주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가령 시중에서 10원인 주식을 8원에 주는 것인데, 그러면 나머지 2원은 비용으로 계상해야 한다. 우리사주를 온전히 주주로 봐야 하는 가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노동이사제 원조 독일도 글쎄? = 유럽에서는 모두 19개국에서 노동이사제를 시행 중이다.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 스웨덴, 네덜란드 등 19개국에서 도입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은 공공부문에만 적용했다. 독일은 500명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이라면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모두 근로자 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하지만 유럽 국가들의 현실적인 상황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독일에서는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적으로 운영하면서 노동이사는 감독만 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더구나 독일은 전체기업중 90%이상이 유한회사이고 주식회사는 1%에 불과하다. 반면 한국은 기업의 95%가 주식회사다.독일에서조차도 노동이사제는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폐지ㆍ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식 유한책임회사법에 따라 하나의 이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이원적 이사회를 해도 되고, 일원적 이사회를 해도 된다는 것이 EU의 입장인데, 독일 기업들이 자국을 떠나 EU 기반의 회사로 돌아서고 있다.박소연 기자 mus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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