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사흘을 보내고 이스탄불로 돌아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났다. 공항은 밤새 내린 폭설로 마비되었다. 대합실 통유리 밖으로 제설차가 활주로를 새로 닦는 모습을 구경하며, 폭설로 지연된 비행기 운행이 내 인생에 선사하게 될 뜻밖의 구멍을 상상했다. 뚱뚱한 스페인 아주머니들은 단체 여행을 왔다. 가죽점퍼를 입은 흑인 청년은 껌을 씹고 피부색이 갖가지인 아이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말로 동맹을 맺는다. (카파도키아 여행 중에 몇 번이나 마주친 네 명의 한국 남자 대학생들, 이들은 영어로만 대화한다). 몇 시간 만에 눈을 치우고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폭설을 감안하면 정상 운행이었다. 창밖으로 흘낏 본 남겨진 비행기들. 비스킷과 오렌지 주스를 사양하고 그보다 더 달콤한 꿈이 생각나 얼른 눈을 감았다. 이스탄불이 보이는 바닷가에 이 비행기가 추락했으면! 모두 살아남고 나 혼자 죽었으면!
그럴 때가 있다. 문득 내가 사라졌으면, 아니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혹은 지금이 아닌 어느 시간 속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욕구와는 결이 다르다. 그것은 또한 죽음충동과 같은 도착적이고 직접적인 욕망과도 좀 다른 듯하다. 단지 낭만적이라기엔 본질적이고, 진정으로 외설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조리 운운하기엔 어찌되었건 그에 이르는 인식적 절차가 생략되어 있다. 종교적 깨달음과도 무관하다. 돈오(頓悟) 곁에는 항상 점수(漸修)가 있게 마련이다. 또는 여행 중에 자신도 몰래 빠져든 엑조틱한 감상이라기엔 참으로 맥이 빠지고 말이다. 일상생활 중에 돌연 그럴 때가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유도 맥락도 모르겠는데 그럴 때가 있다는 거다. "내 인생에 선사하게 될 뜻밖의 구멍" 그런 게 "달콤한 꿈"처럼 내 앞에 당도할 때가. 그럴 땐 그저 "얼른 눈을 감"고 그 "구멍" 앞을 잠시 서성여 보는 것도 그래서 완벽히 텅 비어 버리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도 꽤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잠시'여야 하고 말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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