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낙규기자
[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지난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강행할 당시 미국 육군대학원은 특별한 전쟁시뮬레이션을 가동했다. 북한 정권이 붕괴했을 경우 현지 핵무기 처리 등에 대비한 가상 전쟁시뮬레이션이다. 시뮬레이션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밀사항으로 공개되지 않았으나 북한 정권이 붕괴해 현지 핵시설이나 핵무기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을 경우에 대비한 미군 개입 전략도 가상 시나리오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컴퓨터로 진행하는 전략과 훈련은 과연 얼마나 진화했을까. 군 훈련과 접목한 시뮬레이션을 보기 위해 지난 9일 경기도 안양 스마트퀘어산업단지에 위치한 네비웍스를 찾았다.
'ㅁ'자 형태의 사옥에 들어서자 건물안 330㎡(100여평)넓이의 소규모 운동장에 컨테이너(container)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장병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전술훈련을 할 수 있는 '소부대 전술훈련용 게임(RealBX)'이다. 기존의 시뮬레이터는 단순히 조종사들이 비행훈련을 익힐 수 있는 1세대 시뮬레이터였다면 국내 최초로 개발된 네비웍스의 시뮬레이터는 가상의 공간 안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해 전술훈련을 할 수 있는 2세대 시뮬레이터다.
20대 젊은 직원 12명은 컨테이터 안으로 들어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기자가 "시뮬레이션 게임같다"고 말하자 직원들은 의기양양하게 "진짜 전투를 보여주겠다"며 각자 맡은 임무를 설명했다. 젊은 여직원은 "내 임무는 전차 포수로 적의 전차를 파괴하고 소대 장병들을 엄호하는 역할"이라며 수치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곧 컴퓨터 화면안에는 전차 2대와 장갑차 1대가 나타났다.
이어 옆좌석에 앉은 직원은 공격헬기를 띄우며 "정찰 후 진격하라"며 조종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10여대의 컴퓨터는 각자 위치에 따른 다른 화면이 펼쳐졌다. 직원들은 동시다발로 헤드폰을 통해 각자의 상황, 위치를 설명하며 부산하게 움직였다.
회사 관계자는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은 가로, 세로 50km 크기의 강원도 홍천군을 3차원 영상으로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며 "경기도 파주, 인천항만 등 한반도 지도를 3차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차 포수 임무를 수행중인 여직원은 전차를 진격시키고 적의 전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화면에는 전시상황을 새벽시간대로 설정해 안개가 자욱한 상황이었다. 공격에도 불구하고 적의 포탄도 만만치 않게 떨어졌다. 결국 아군의 전차가 폭파되고 장갑차를 더 이상 보호할 수 없게 되자 앳되어 보이는 장갑차 운전병인 직원은 "장병들은 하차해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맨 끝에 앉아 있는 직원은 "정찰용 드론을 띄우겠다"고 말하자 상공에서 바라본 강원도 홍천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론은 적의 동태를 그대로 보여줬고 장병들은 적의 위치를 파악한 후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어 적이 눈앞에 나타나고 총격전이 벌어졌다. 적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지만 15분간의 혈투끝에 적을 진압하고 적진지를 급습하는데 성공했다.
회사 관계자는 "시뮬레이션 가상훈련을 통해 군작전을 실제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고 다양한 돌발상황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며 "미 육군이 2008년부터 시뮬레이터를 도입해 전세계 전쟁에 투입되기전에 작전을 미리 익힌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직원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좀 더 자세히 보여주겠다며 기자에게 얼굴을 가릴만한 고글을 씌워줬다. 가상현실을 처음 접한 기자는 순간 움찔했다. 눈앞에 소초를 지키고 있는 북한군이 모닥불 앞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듯 했다. 북한군의 잡담소리와 함께 "적기지에 습격해 기밀문서를 빼오라"명령이 하달됐다.
회사관계자는 당황한 기자의 양손에 20cm크기의 마우스를 쥐어줬다. 가상현실에서 양손에는 K2소총이 들려있었지만 마우스의 방아쇠를 당겨보아도 총을 발사할 수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가상현실이지만 발사와 조준을 실제와 똑같이 해야하고 총알이 떨어지면 실제 장전을 하는 모습을 해야만이 재장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적을 향해 총구를 겨눠봤지만 이미 적에게 위치가 발각된 상황. 여기저기서 적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고 당황한 기자는 등에 진땀을 흘려야만 했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도 적의 기습공격은 이어졌다. 자세를 낮추고 바닥에 있는 RPG-7 대전차 로켓포를 손에 들고 발사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몰려드는 적을 감당할 수 없었다. 곧이어 '작전실패'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훈련을 마치고 건물을 빠져나오자 뚝 떨어진 기온과 찬바람에 흥건하게 젖은 땀은 금새 식었다. 하지만 젊은 연구원들의 시뮬레이션에 대한 열정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 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