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詩]토란잎 이슬 한 채/정희성

잎 한 칸에 올라앉은 이슬 한 채 덧없다고?  저 응축의 힘을 바라봐!  가멸차게 덜어 내고 맑은 눈 하나 남긴 것인데 삼백육십 도 온 우주가 들어와 앉아 있는,  저 깊은 연원(淵源)을 바라봐! 
 시인은 놀라는 사람이다. 문득 놀라는 사람이다. 토란잎을 보고 놀라는 사람이다. 새벽에 일어나 뒤꼍을 지나다 놀라는 사람이다. 뒤꼍 장독대 한편에 핀 토란잎에 맺힌 이슬 한 방울에 깜짝 놀라는 사람이다. 놀라워라, 저 "응축의 힘"이여! 시인은 자신이 놀란 것에 놀라는 사람이다. 놀란 마음을 꾹꾹 눌러 가며 자신이 놀란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그 집중의 힘으로 세계를 꿰뚫는 사람이다. 보라. 그리하여 토란잎에 "올라앉은 이슬 한 채"처럼 스스로 "가멸차게 덜어 내고 맑은 눈 하나"가 된 사람을, 또한 그리하여 "저 깊은 연원"을 자기 마음속에 굳건하게 심은 사람을. 나는 사람들이 자주 놀랐으면 좋겠다. 자주 두근거리고 자주 감동하고 자주 경탄했으면. 그래서 하루하루가 매순간이 온통 경이롭길 바란다. 귀띔 하나 보태자면, 시인은 원래부터 천부적으로 놀라는 사람이 아니라, 놀랄 준비를 자꾸 하는 사람이라는 것. 자 그런 마음으로 출근도 하고 퇴근도 하고 산책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은행나무도 슬몃 올려다보고, 부디 그러시길.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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