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1549편 불시착의 명암

이스트우드 감독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과 마이클 무어 감독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 컷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비행기 사고가 발생했다. 승객과 승무원 155명을 실은 US 에어웨이즈 1549편이 이륙한지 얼마 안 돼 새떼와 부딪혔다. 양쪽 엔진이 망가지자 체슬리 슐렌버거(65) 기장은 허드슨 강에 비상착륙했다.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승객들을 탈출시켜 한 명의 희생자도 내지 않았다. 그는 "비상상황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을 반복적으로 했다. 그것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했다.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은 이 실화를 그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86)은 "뉴스를 통해 내용을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는데 논쟁거리가 무엇인지를 놓치고 있었다"고 했다. "슐렌버거 기장은 영웅으로 불릴 만큼 훌륭한 일을 해냈지만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자신에 대한 의심이 싹튼다. 절대적으로 옳은 결정이었는지 이사회를 설득하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지점에 드라마가 있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 컷

톰 행크스(60)가 연기하는 슐렌버거는 비행기가 고층빌딩과 충돌하는 악몽을 꾼다. NTSB는 라가디아공항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 아니었는지 등을 캐묻는다. 이스트우드 감독은 사고를 세 차례 복기하고, 슐렌버거의 손을 들어준다. 또 많은 이들이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심지어 슐렌버거를 의심하는 NTSB조차 더 안전한 방법이 없었는지를 조사하는 합리적인 조직으로 묘사한다. 안전 불감증이 만연한 우리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슐렌버거는 그해 국회 청문회에서 "비행에 일생을 바치고 제 일을 사랑했지만 그로 인해 겪은 일은 유쾌하지 않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저와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됐다. 임금은 40%가 삭감됐고, 연금은 없어졌다. 직업 조종사 중 한 명이라도 자녀가 같은 일을 하기를 바랄지 모르겠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뉴욕에서는 비행기 사고가 또 일어났다. 2월 12일 콜간 항공 3407편이 버팔로 외곽 클라렌스 주택가에 추락했다. 주민 포함 쉰 명이 숨졌다. 언론은 앞 다퉈 조종사 과실을 지적했다. 몇몇 매체는 마빈 렌슬로 기장과 레베카 쇼 부기장이 잡담했다는 완곡한 표현을 썼다. 이들은 박봉과 과로에 대해 대화했다. 마이클 무어 감독(62)은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2009년)'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언론에서 조종사들이 패스트푸드 가게의 매니저보다 연봉이 왜 적은지는 취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스틸 컷

쇼 부기장의 연봉은 2만달러(약 2228만원) 이하였다. 부업으로 커피숍 종업원을 했지만 학자금 대출 등으로 짓눌린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조종사들의 형편도 다르지 않다. 슐렌버거 기장은 매일 네 차례 비행기를 운전했다. 많은 조종사들이 무료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돈을 벌기 위해 혈장까지 판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에서 28년간 근무한 월터 기장은 "이들은 단지 좋아서 비행할 뿐이다. 회사에서 근거리노선 대부분을 하청업체에 떠넘겨 노조의 힘이 약해졌다. 단가를 계속 낮추다보니 안전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피해자 유족들은 지방항공사의 조종사 관리규정을 개선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이스트우드 감독은 이런 부조리를 다루지 않는다. '미국은 안전한 나라'로 서둘러 결론짓는다. 청문회 신에서 슐렌버거를 매섭게 압박하던 NTSB는 시뮬레이션 기록이 여러 차례 드러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양심선언을 한다. 그 사이 슐렌버거의 사고 후유증은 깨끗이 씻겨 내려간다. 사고 당시 조종실 녹음 파일을 처음 청취하고 휴정을 요청한 그는 트라우마따위는 없는 듯 차분한 목소리로 부기장을 칭찬한다. "자네가 매우 자랑스러워. 우린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행크스의 담백한 연기에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묻혀버린다. 그런다고 미국인들의 자긍심이 높아질까?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의 마지막 신에서 무어 감독은 호소한다. "저는 이런 나라에 살기를 거부합니다. 떠나지는 않을 거고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문화레저팀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