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진뒤 SNS에 간토학살 부른 '조선인 루머' 등장

'누가 일본 우물에 독 풀었나' … 93년전 정부비판 무마할 '증오 표적'으로 죽임당한 악몽 살아나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 연합뉴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한 뒤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된 소문이다. 물론 악의적인 루머였고 산케이신문 등도 일부 극우세력이 이 같은 글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진의 공포에 떨고 있던 이 지역 재일한국인들은 93년 전 간토(關東) 대지진 당시의 피맺힌 역사를 떠올려야 했다.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섬뜩한 이런 소문은 누가 퍼뜨리는 것이며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간토 대지진의 역사를 통해 '우물에 독을 풀었던' 자들의 실체를 되짚어 봤다.때는 93년 전인 1923는 9월 1일. 매그니튜드 7.9, 최대 진도 7의 대지진이 일본 간토 지역을 강타했다. 지진은 대규모 화재와 해일(쓰나미)을 가져왔고 죽거나 실종된 이들이 40만 명에 달했다. 경제 불황에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대지진까지 겹치자 일본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정부로 향하는 분노의 민심을 돌리기 위해 다른 증오의 표적이 필요했다. 당시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 내각은 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 '조선인이 반란을 일으켜 군인들과 싸우고 있다', '지진이 일어난 뒤 약탈을 일삼고 있다'는 등의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내무성이 경찰에 보낸 문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어 이를 사람들이 사실로 믿도록 공작대를 조직해 조선인들이 벌인 것으로 보이는 테러 활동을 조작했다. 또 자경단이 만들어지자 조선인 학살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정부의 선동에 일본인들은 전국에서 3689개의 자경단을 만들어 조선인을 살해했다. 이들이 살해한 조선인 숫자는 6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바로 '간토대학살'이다. 평범한 일본인들이 죽창 등을 들고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학살에 가담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이를 조직적으로 지휘했다. 혼란의 와중에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노동운동가 히라사자와 게이시치(平澤計七), 사회주의지도자 오스기 사카에(大杉榮)부부 등 일본의 진보적 인사 수십 명이 검거돼 살해당했다. 하지만 93년이 다 되도록 간토대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은 물론 책임자 처벌도, 사과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프리랜서 작가 가토 나오키는 그의 책 '구월 도쿄의 거리에서'에 이 참혹한 학살극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썼다. 도쿄에서 지금 '조선인을 몰살해야 한다'고 외치는 혐한(嫌韓) 시위가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지난 14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타고 있다'는 글이 버젓이 온라인에서 퍼진 것 역시 이와 맞닿아 있다. 그는 "도쿄는 인종주의에서 비롯한 유언비어에 선동돼 평범한 사람이 학살에 손을 담근 과거를 갖고 있는 도시"라며 "간토대학살의 진상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김철현 기자 kc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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